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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집을 바라는 것, 집에 바라는 것.

우리만의 필요를 온전히 채워주는 주택을 직접 지어보고 싶다.

주택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에게도 나이에 걸맞은 성공의 지표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지게 된 마당 딸린 작은 3층 집은 우리가 얻어낸 성취였고, 그래도 어디론가 잘 가고 있다는 보증 같은 게 되어주었다. 주택 생활은 아파트 때와 여러모로 달랐다. 한 동네의 주민이 되어 다소 옛날 방식으로 작동하는 커뮤니티의 장단점도 경험해보고, 부지런히 관리를 해야만 집이 제 기능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아이가 스스로 걷기 시작할 때 주택으로 온 건 아이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 널찍한 마당과 시원한 창밖 풍경이 만드는 특별한 시간들, 그것이 아이들 성장에 미치는 (결코 적지 않아 보이는) 영향 같은것들에 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취향을 진하게 담은, 우리만의 필요를 온전히 채워주는 주택을 직접 지어보고 싶어졌다. 인생 목표가 조금 바뀌었달까. 7년 안에 바라던 집을 지어서 거기서 오래 살고 싶다. 마음이 통하는 가족 둘셋이 이웃하여 같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외국에서 살아볼 만한 확실한 이유 하나가 늘 것 같기도 하다. 이런거, 인생  목표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집은 많은 것을 담는데.  

언젠가 건축가를 만나야 한다면 우리가 바라던 집에 관해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까? 차근차근 적어봐야지. 

  • 단순하고 일체감이 느껴지는 무겁고 두터운 매스. 
  • 어떠한 인공물도 보이지 않고, 창의 형태보다는 바깥의 풍경을 정돈하여 실내로 들이는 프레임으로 역할 하는 두꺼운 유리가, 적어도 주방이나 거실 중 한 곳에 충분한 빛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대지가 그런 풍경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창이 꼭 대지와 수직으로 바깥을 면할 필요는 없음.
  • 나무, 콘크리트, 돌, 금속의 중량감과 본래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외부/실내 마감재 선택과 마감 방식.
  • 각기 다른 속성의 자재들이 만나는 지점의 구조적인 미와 공정상의 견고함이 결합 방식 또는 이를 돕는 자재의 두께와 크기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남.
  • 실내 구획은 단순하고 개방적이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서로의 존재를 쉽게 인지할 수 있음
  • 소박한 평면계획은 다양하고 의외적인 높이차를 통해 융통성과 위트를 더함. 
  • 방은 6면 중 어느 하나도 다른 방과 면하지 않음.
  • 수납 공간들은 설계 단계에서 이미 구조로 계획되어 벽체의 일부이거나 벽 안에 온전히 숨어 있으며, 거대한 수납공간과 그에 딸린 문은 거의 모든 생활 집기들을 단숨에 숨긴 후 공간의 면을 유지함.
  • 보존된 자연 위에 집을 얹을 경우 대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지며, 매스가 두텁다 하더라도 환경에 순응하는 형태, 재질, 색감을 가져야 하고, 동시에 집의 기능은 바람, 습도, 온도 등의 환경을 최대한 극복하며 항상성을 유지함. 
  • 여러 집이 함께 집을 지을 경우,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졌지만,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공유 공간이 필요.   
    v.0.2 updated on 10 March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