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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Meda Chair

Meda Chair © Vitra
Designed by Alberto Meda

3층 다락에 놓을 Meda Chair.

디자이너보단 엔지니어라 불리기 좋아하는 Alberto Meda가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 의자. 공학적으로 정교한 물건은 대부분 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아들 Francesco Meda는 저 큰 이름 “Meda”라는 산을 넘어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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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Tomado bookshelves

Tomado Holland 빈티지 책장

아파트 시절 한쪽 벽을 차지하고 있던 Tomado Holland 선반이다 (원래는 책장으로 판매되었다). Nills String과 함께 인기있는 벽선반이다. 나무와 철재 모델이 있는데, 나무 선반 구하기가 조금 더 어려운 편이다. 어렵게 어렵게 몇 세트를 맞춰서 가지고 있었는데, 최근 Tomado에서 철재선반을 다시 생산하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String이 훨씬 잘 만들어진 제품이지만 (당시 String 선반의 네덜란드판 모조품 정도였을 것 같다), Tomado 철재 선반들의 경우 De Stijl의 색감을 r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스트링에 비해) 두겹 프레임이 만드는 독특한 구조미 때문에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창고에 묵혀두고 있는 Tomado 선반이 하나 있는데, 벽선반이 아니라 바닥용이고, 프레임을 튼튼하게 잡아주는 X자 프레임이 멋드러진 모델이다. 이건 아마 재생산 안될 것 같으니 잘 놔뒀다 화분 놔두는 용도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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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2019년 여름이 끝났다.
가족과 함께한 거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

2019년 9월의 메모

신입생들이 왔다. 20개 국가에서 온 80명. 전 교직원이 긴장과 기대감을 안고 이들을 맞았다. 난 네덜란드 대학의 이런 면이 참 좋은데, 매년 학생들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늘 친절한 건 아니고, 차차 서로 실망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린 이들을 기다렸고,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 이건 학과가 신입생 유치면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과 별개의 것인데, 그냥 새로운 학생들이 오니 반갑고 설레는 거다. 어쩌면 이게 네덜란드 교육의 힘일지도.

스무 명씩 4 클래스로 나뉘었는데 이들 중 한 클래스의 책임 선생이 됐다. 앞으로 4년 동안,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생활 전반을 살피고 도와야 한다. 이들의 졸업식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퇴근하고 오니 아내는 아이를 재우러 2층에 올라갔고, 1층 아내 노트북 화면 보호기만 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로 아이 사진이 나오는데, 사진만 보고 있어도 피로가 풀렸다. 아이를 재운 아내가 내려오고 나서도 둘이서 한참 화면 보호기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삶에 큰 힘을 얻는다.

2015년에 태어난 아이는 오늘부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점심시간에 아이를 다시 집에 데려와서 밥을 먹이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수업에 다시 데려다 주어야 하는데, 하루 네번 씩 학교 앞에 가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내는 잠시 집에 데려와서 밥 먹이고 다시 보내는 게 은근 좋았다고 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책도 봤다가 소파에서 잠시 뒹굴거린 후 다시 학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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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과 환경

HUBB

‘Learning Environment’
Designed by Mecanoo X Gispen

HUBB © Mecanoo

네덜란드 학교, 도서관, 회사들은 좋은 책상, 의자, 조명 구입에 깜짝 놀랄만큼 많은 돈을 쓴다. 설계/인테리어 단계에서 건축 회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걸까? 어느 사무소든 자신들이 설계한 건물에 싸구려 가구가 들어가는 걸 좋아할리 없을테니까. 여튼 덕분에 좋은 가구와 조명이 얼마나 왜 중요한지 많이 배운다. 

최근에 틸버그 캠퍼스에서 아인트호벤 캠퍼스로 옮기게 되었을 때 Rachelsmolen R3 빌딩에서 일하게 되어 내심 좋았다. 캠퍼스가 위치한 도로명 “Rachelsmolen”의 앞 글자를 딴 R3 빌딩은 80년대 말에 지어진 낡고 못생긴 건물이었다는데,  Mecanoo 델프트 공대 도서관을 설계했고, 요즘 Tilburg에서 가장 핫한 공간인 LocHal 인테리어를 맡은 건축회사 가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사무용 가구 브랜드 Gispen과 함께 작업했다. 덕분에 요즘 값비싼 Gispen 가구들을 마음껏 써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라운지 체어는 Ellen 2 모델이고, 1층 그룹 활동 공간에 쓰인 모듈형 가구는 두 회사가 함께 디자인 한 Hubb 시리즈다. 이들은 Hubb를 “Learning Environment”라고 불렀다. 흥미로운 점. 실제 사용하면서 느끼는 학습 환경으로써의 융통성은 (아마도 시공의 융통성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편인데, 그래도 건축 프로젝트에서 물리적 학습환경과 그 영향을 진지하게 고민한 것 같아 일단 반갑다.  

전에 스위스 로쟌 공대를 다녀와서도 같은 글을 썼었는데, 잘 디자인 된 공간과 그것이 주는 심미적 만족감은 학습 동기에 영향을 미치기 보단,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구성원을 위한 리워드라고 생각한다. 공간이 멋지다고 더 열심히 공부하진 않는 듯. 


© Gispen

Gispen은 튼튼하고 편리하고 편안하면서 구조미가 돋보이는 사무용 가구를 만들었다. 요즘 제품들이 오히려 옛날 제품보다 조금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튼튼’함 면에서 재료들이 가벼워지면서 무게감이 사라졌달까. 1920년대 천장 조명 (모델명 Giso No. 12, 13은 나도 하나 가지고 싶다), 1940년대 사무용 책상과 책장들은 수집가들에게 늘 인기다.

Gispen Collection이라는 사이트에 가면 옛날 제품들을 볼 수 있다. 
https://www.stichtinggispencollectie.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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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2019년 8월의 메모

내가 감당하기 힘든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가고, 시작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8월이다. 여전히, 난 어떤 사람인지 답을 내지 못한 채, 호인이고 싶었으나 아마도 호불호가 선명히 갈리는 사람으로 마흔 문턱을 넘었다. 지난 몇 달, 내 잘못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나를 뜯어 고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일상은 시시콜콜한 것들 만으로도 금세 가득 채워지고, 밤마다 찾아오는 피곤과 부채 의식을 뒤이겨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또 괜찮은 하루, 괜찮은 나를 기대하곤 했다. 나를 배반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뜨거운 여름이다. 작년처럼, 갑자기 찬 바람이 불면 겨울이 오겠지.

본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인트호벤 캠퍼스에 독립되어 있던 경제/경영 관련 학과들이 단일 학부(Fontys School of Business & Communication)로 재편되는데, 올 9월 처음 유학생을 받기 시작하는 커뮤니케이션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정든 동료, 학생들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더 안정적인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개인적으로는 기쁘고 감사하다. 

아이와 뒷 뜰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비행기들을 봤는데 제대로 하늘을 본 게 언젠가 싶어 놀랬다. 저녁을 먹고 약간 나른할 때 아이를 부르면 내 무릎에 오래 앉아 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자주 같이 하늘을 봐야겠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지만,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으면 아마 서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내가 다시 가게를 열었다. 육아 노동의 로드는 여전하고, 만삭에 곧 둘째까지 태어나는 데다, 그간 엇비슷한 샵들도 생겼고, 지금 공부하는 것, 앞으로 공부할 것들로 바쁘겠지만, 결국 아내는 자기를 닮은 가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꾸려 갈거다. 언제나 화이팅!

아이의 생각이 자라는 게 눈에 보인다. 마음과 행동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엉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부끄러운 것과 무서운 것에 대해서도 점점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때때로 아이가 느끼는 창피함이나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선 자주/많이 칭찬하고, 안아주고, 기다리고, 이해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 중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겨우 태어난 지 4년이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이런 순간들은 훨씬 빨리 찾아온다.

여름 휴가가 끝났다. 그동안 아이는 잠들기 전마다 하루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노는 게 제일 좋은 아이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소중한 이가 갑자기 떠났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페북을 포함한 여러 공간에서, 여러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 더러는 부주의했고, 심지어 슬픔을 전시하듯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가까웠던 사람들은 별 말이 없었다. 사실 나와 아내도 할 말이 없었다. 떠난 이에게 할 수 있는 말도, 남은 가족에게 전할 위로의 말도 잘 찾지 못했다. 그냥 왜 그렇게 빨리 가야 했는지… 그의 죽음이 남긴 것은 무엇인지, 산다는 건 무엇이고 앞으로는 어떠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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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Hamra

by Collectif Encore

Photo © Michel Bonvin

오랜만에 스크렙하고 싶은 건물 발견. 탁 트인 대지, 굴뚝/난로/사다리/지붕/욕조의 활용법, 개방감을 극대화하는 창, 단순한 매스, 콘크리트와 나무의 합, 주택이자 일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우겨넣으면 대충 이런 건물이 나오는구나.

설계 및 인테리어 디자인: Anna Chavepayre, Collectif encore https://www.archdaily.com/910867/hamra-collectif-enc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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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LC3 POLTRONA, Cassina

외출보다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멋진 암체어는 인생 소품이다. 암체어를 바꿀 때가 되었는데, Cassina의 LC 시리즈 중에 LC3 POLTRONA 가죽/꼬냑 색상이 너무 갖고싶다. 신기한건지 당연한건지 좋아하는 드라마 주인공 공간에도 이 가구가 놓여있는데, 셜록에서 베네딕트 컴버베치가 앉아 있는 의자고, Lie to me 오피스에 있는 건 폭이 좁은 LC2 모델이다. 역시 문제는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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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네덜란드 교육과정

네덜란드 대학 교육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관

초등과정

초등학교는 4살에(한국 나이 5살) 1학년을 시작하여 8학년까지 다닌다. 네덜란드 교육과정은 초/중등과정과 대학 진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레벨의 중등-대학 연계 과정으로 진학할 것인지, 그래서 최종적으로 어떤 레벨의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초등학교 졸업 전에 어느 정도 미리 정해진다. 초등 교사가 초등과정 내내 쌓인 데이터를 평가하여 선언하듯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 학생/학부모들은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중등과정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 – VMBO, HAVO, VWO

중등 과정은 12살부터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이다. 중고등학교를 마치는 시기가 다른 이유는 앞으로 진학할 대학의 레벨에 따라, 예비과정 없이 바로 졸업하거나, 1년 또는 2년 동안 대학 예비과정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중등 과정은 학생 희망보다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레벨이 정해지며, 해당 과정의 졸업 시험 과목들을 다 통과할 경우 연계된 레벨의 대학 입학 자격이 (거의) 자동으로 주어진다. 대학들은 (실제로 꼭 그렇지도 않고 학교나 전공마다 차이가 있지만) 학생 선별을 위한 별도의 과정 없이 원서를 넣은 학생들은 다 받아야 한다. 중등과정을 레벨별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VMBO라는 중등 과정을 4년 동안 다니면 MBO 레벨의 대학으로 (일부는 HBO 레벨 대학으로 진학 할 수도 있다), HAVO라는 과정을 5년 만에 졸업하면 HBO 레벨로, VWO라는 과정을 6년 동안 다니고 졸업하면 WO 레벨에 진학할 수 있다 (일부 VWO 졸업생들은 HBO 레벨로도 간다). 앞서 적었듯이 개인적인 이유 또는 노력 여부에 따라 자신의 과정을 중간에 바꿀 수도 있다. TTO라고 불리는 이중언어 학교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네덜란드 공교육 트렉이지만 교육과정의 다수를 영어로 진행한다. 흔히 TTO가 VWO레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TTO는 레벨의 구분이 아니며, TTO 중에 VMBO, HAVO, VWO 레벨이 있을 뿐이다. 또 하나, 김나지움(gymnasium)이라 불리우는 과정을 VWO의 상위 과정(가장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가는 과정)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은데, 김나지움은 일반적인 VWO 레벨 (atheneum이 정확한 명칭이다)에 라틴어와 현대 그리스어가 추가된 과정이다. Atheneum 학생들에 비해 고전언어 두 가지를 추가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와 공부 시간을 조금 더 잘 분배해야 하니 어떤 의미로는 gymnasium 학생들이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TTO가 gymnasium 커리큘럼을 구성할 경우 이미 영어와 네덜란드어 두 언어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고전어는 라틴어만 배우는 경우가 많다.

TTO 관련 링크
https://www.nuffic.nl/onderwerpen/alle-tto-scholen-in-nederland

고등과정 – MBO, HBO, WO

네덜란드에서 MBO는 대학보다는 직업 훈련과정으로 보고, 법적으로도 학교 이름에 “University”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개념상 한국의 전문대 또는 공공 직업훈련기관에 가깝다. 이전 설명처럼 VMBO라는 중등 과정을 마치고 진학하는데, ‘대학 예비과정’에 해당하는 과정 없이 4년 만에 중등과정을 마치면 바로 MBO로 진학할 수 있다. 즉 MBO의 교육 커리큘럼은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한 학생이 곧바로 따라가기에 무리 없도록 구성된다. 단 MBO 과정에서 추가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대부분 1년을 더 보낸다)은 HBO로 진학이 가능하다.
네덜란드에서 대학 교육은 흔히 ‘실무중심대학’이라 불리우는 HBO, ‘연구중심대학’이라 불리는 WO로 다시 구분된다. 앞서 적었듯이 중등과정에서 HAVO 레벨로 졸업하면 HBO, VWO를 나왔다면 WO로 진학할 수 있다. HBO는 보통 4년 과정이고, WO는 3년 과정이다. 얼핏 WO의 교육이 더 짧아보이지만, HBO 학생들의 경우 중등 5년 과정 중 마지막 학년을, WO의 경우 6년 과정 중 마지막 두 학년을 대학 준비 과정으로 썼다고 보면, 같은 해에 태어난 학생들의 최종 졸업시기는 같아진다. 단 WO의 경우 학부/석사 통합과정의 형태를 띤 곳이 많고, 의대처럼 전공에 따라 4년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하며, 일부 HBO는 3년 만에 졸업장을 딸 수 있는 우등 코스를 두기도 하기에 모든 학교/학과에 일괄 적용되는 설명은 아니다. HBO 학생들은 1학년을 끄트머리에 Propaedeutic Assessment라는 시험을 치르는데, 이걸 통과하고 WO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WO 1학년으로 다시 대학 생활을 시작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HBO에서 1년을 보내고 Propaedeutic Assessment를 통해 WO로 올라 오면, 같은 해에 태어나 VWO 과정에서 1년을 더 보내고 WO로 바로 진학한 고등학교 동창들과 같은 교실에서 만날 수도 있다. HBO입장에서는 좋은 학생들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나가는 길을 좁게 만들고, WO의 입장에서는 WO의 배타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기에 들어오는 길을 좁게 만들어 놓아서 이런 케이스가 흔하지는 않지만 불가능 한 건 아니다.


대학의 레벨을 MBO, HBO, WO로 나누는 개념적인 기반은 특정 직업군, 혹은 특정 포지션이 요구하는 논리(수리)적 사고력과 어휘력, 글쓰기 능력, 외국어 능력 등에 차이가 있다는 가정이다. 네덜란드는 이런 수준 구분에 관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 같은데, 현실 세계는 복합하고,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모든 ‘구분짓기’에 대해 한 번쯤 반문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시스템이란 비판이 늘고 있다. 여기에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특정 교육 철학이나 종교에 바탕을 둔 특수한 학교들도 존재하고, 외국인 학교 졸업생, 해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유입되는 학생들까지 더해지면서 변수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대학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수준 높은 어휘력과 글쓰기 능력이 고등 교육에서 필요한 사고 능력과 향후 좋은 학습 결과를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Indicator이며, 저런 구분이 어떤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너무 어린 시기에 학교(정확히는 몇몇 교사)에 의해 진로와 향후 인생이 고착될 가능성에 대한 비판도 많은데, 교육 시스템 자체만 본다면 꽤 유연하고 자신의 진로를 여러번 수정할 기회(흔히 뒷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들 한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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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중심대학(HBO)과 연구대학(WO)의 차이?
• 차의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사라지는 중
• 연구중심대학(WO)과 교육중심대학(HBO)로 번역하는게..
• 그래도 같다고는 할 수 없음

WO, HBO 양쪽을 오가며 일하는 개인적인 경험 + 보태어 동료, 학생,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 둘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가 선명하지 않고, 그마저 사라지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HBO와 WO를 가르는 가장 큰 분기점은 구성원이 peer-reviewed 저널에 연구물을 출판할 수 있는가였는데, HBO들이 Lector라는 연구중심 교원을 두게 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더욱 희미해졌다. 교육 목적/방법론 차원에서도 실무 중심, 학문의 실용성, 취업 친화적 교육, 기업가 정신, 협력학습 등 HBO가 간판으로 삼던 것들을 WO 역시 전면에 내세우면서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사실 비슷한 학과들이 HBO와 WO 양쪽 모두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는데, 예를 들어 종교학, 경영학, 법학, 건축학은 HBO에도 있고 WO에도 있다. 심리학도 양쪽에 다 있고, 가장 실무적인 교육을 할 것 같은 MBA나 건축학은 WO가 강세고, 노인학, 종교학, 사회복지학 같이 연구 기반일 것 같은 프로그램은 HBO가 더 잘 하고 있다. 최근 채용되는 선생들의 프로필을 보면 HBO는 박사 학위자를 선호하고, WO는 소위 네트워킹에 능한 실무형 학자를 선호하면서 이마저도 서로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복잡 미묘하고 계속 변화중인 이슈랄까.


HBO와 WO의 구분에 대한 내 최선의 이해는 이렇다. 사실 HBO, WO 둘 다 실무 중심적이다. HBO만 실무 중심이 아니라, WO 역시 인류 역사에서 학문 영역으로 굳건히 인식된 몇몇 분야 (예를 들어, 심리학, 의학, 물리학, 수학, 화학, 생물학, 언어학, 신학 등)의 ‘활자화된 연구물 (주로 저널에 실리는 아티클) 출판’이라는 복잡한 실무를 잘 수행할 ‘연구자’를 키우는 실무 교육을 하고 있다. 따라서 둘 다 실무 중심이란 면에서 HBO를 “실무중심대학”이라고 번역하는 건 적합하지 않고, 굳이 구분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연구중심대학(WO)’과 ‘교육중심대학(HBO)’으로 번역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한국 대학과 네덜란드 대학을 같은 선상에 비교하려는 시도는 가급적 안 하는것도 좋겠다. 내 생각에 한국 대부분의 대학은 HBO, WO, MBO가 마구 섞인 형태고 (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님), 일부 대학 일부 학과들만 WO와 같은 연구 중심 실무 교육을 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HBO와 MBO가 혼합된 형태라 생각된다.


물론 HBO와 WO가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WO 졸업생들이 훈련받은 비판적 사고능력과 Validity 또는 Reliability가 높은 글쓰기 능력은 향후 커리어에서 WO 졸업생들에게 더 높은 (‘더 좋은’과는 약간 궤가 다름) 기회를 제공할거라 생각한다. 특히 데이터 기반 사회를 살아가는 현 세대에게 있어 각종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리하게 해석하여 실무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은 더 이상 일부 전공에 국한된 역량이 아닐텐데, ‘정확성’과 ‘논리적 절차’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사고 기반이 약한 HBO의 다소 무른 교육은 WO와 비교시 손쉽게 경쟁 열위에 머무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그간 HBO의 교육이 Validity 또는 Reliability에 대한 강조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지금까지 실제 실무 현장 (특히 일반 기업)에서 그토록 높은 수준의 과학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았고, 과거 HBO의 교수진들 역시 그런 종류의 업무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데이터가 세상을 구할거란 시대에 WO는 태생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비슷한 전공이 HBO와 WO 모두에 있을 때 졸업 후 받게 되는 디플로마의 배타적 특성(예를 들어 수여되는 자격)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HBO는 WO가 가진 인프라를 쫒아가기 어렵다. 학교의 시설, 캠퍼스의 크기, 구성원 수 등에서 WO는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다. WO가 국가 수주 연구비를 독식하던 지난 몇 십년 동안 이루어진 이러한 물리적 덩치 차이는 앞으로 쉽게 극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 다수의 HBO는 미국의 칼리지처럼 작고 개성있는 대학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마케팅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셔닝이기도 하다.


한편, 학생들이 느끼는 교육의 질 측면에서 HBO가 WO를 앞서고 있는 부분들도 있다. WO의 교수진들은 티칭에 대한 요구치가 적고, 대부분 학부 수업에서 튜터와 논문지도 역할을 하고 있는 박사 과정생들은 티칭 경험이 부족하다. WO들이 협력학습, 산학협력, 학생중심교육, 기업가정신 등 그간 HBO가 간판으로 걸던 교육 키워드를 기존 교육과정 안에서 풀어내려고 할 경우, 첫 째는 ‘최신 이론’과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실무’가 당장에 만날 수 없는 수 많은 본래적 지점들 때문에, 둘 째는 그간 교육 자체에만 집중해 온 HBO가(혹은 그 선생들이) 축적한 ‘가르침’의 노하우 때문에 WO의 수업이 삐걱거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선생들의 호칭과 타이틀도 조금 다르다. WO의 랭킹은 Tutor, Lecturer, Assistant Professor, Full professor (Full professor 중 일부가 Dean을 겸직) 등으로 나누어지고. HBO는 Tutor, Lecturer, Senior Lecturer, Lector, Manager, Director, Dean 등의 포지션을 사용한다. 참고로 HBO의 Lector는 WO의 Full Professor에 해당하며, 네덜란드에서 자타가 공식적으로 ‘교수’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HBO Lector와 WO Full Professor 뿐이다. HBO의 일부 Lecturer, Senior Lecture는 WO의 Assistant Professor와 같은 랭킹이며, 급여의 측면에서 볼 때 WO의 Associate Professor에 해당하는 포지션은 HBO에 없다.

 

MBO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일까?
내 개인적인 견해일지 모르나, 앞서 적었듯이 네덜란드는 문해력, 비판적 사고력을 포함한 논리적 글쓰기 능력, 더 나아가 정보 수집-해석-분석 능력의 필요와 정도에 따라 현실 직업 세계를 계급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등교육의 레벨 구분은 이런 계급적 프레임에 기반한다. 가만히 몇 시간 앉아서, 특정 분야 주요 논문 몇 개를 리뷰하고, 자기 생각을 간명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풀어냈을 때 지적 성취감을 느끼는… 그런 걸 오랜 기간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나 기질이 ‘공부 잘 하는’ 것이라면 MBO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긴 하다. 소위 노동/기술 집약적이고, 반복과 경험의 누적으로 expertise를 획득하는 직업군을 위한 교육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느끼는 최근 MBO의 포지셔닝은 좀 색다르다. 우리 학교 옆에 있는 MBO의 경우 비행기 정비에 특화된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데, 대형 트럭에 실린 실습용 전투기들이 실습장을 드나드는 모습은 장관이다. 그 복잡한 기계를 열어놓고 또 복잡한 정비 도구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그 학과 학생들과, 노트북에 Business Model Canvas 템플릿 하나 달랑 열어놓고 온갖 개념과 추상을 우겨넣기 바쁜 우리 학과 학생들을 비교하다 보면 누가 소위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지 엇갈릴 때가 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MBO는 ‘실용교육’의 실현 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고 탄력적인 커리큘럼을 무기로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HBO가 WO와 영역다툼을 하는 사이, MBO는 실무형 교육의 정점으로 다가서고 있고, HBO는 본래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위기감이 (조금) 느껴진다.


네덜란드는 명문대가 없다?
• 살아 남은 학교들은 모두 좋은 학교
• 그러나 더 좋은 프로그램(전공)은 분명히 있음


네덜란드 대학은 모두 명문대라거나, 랭킹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데 실제로는 안 그렇다. 좋고 나쁜 학교가 있고 (단 나쁜 학교는 빠르게 사라진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나은 프로그램(전공)이 분명히 있다. 사실 순위와 평점에 이토록 예민한 대학 교육 시스템이 있을까 싶을만큼 내/외부 평가에 민감하고 그 영향력은 가혹하기까지 하다. 학생 입장에서 좋은 학교/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선 얼마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경영대, 의대, 공대와 같은 넓은 범주 말고, HBO와 WO에 설치된 학과들의 세부 프로그램을 가능한 많이 살펴보는게 좋다. 시야를 넓히고, 본인에게 매력적인 전공을 계속 찾다 보면, 네덜란드 대학 교육이 건텐츠 면에서 얼마나 다양한지 놀라게 될거다. WO는 여전히 전통적인 전공들이 주를 이루지만, HBO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독특하고 유연한 프로그램들이 많다.


물론 학교마다 내용 또는 방법 면에서 전통적으로 강세인 곳이 있으니 이를 먼저 살피는 것도 좋다. 의대까지 PBL을 하고 있는 Mastricht (WO) 대학이나, 강의-시험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수업-평가 방식을 탈피하고 있는 Avans (HBO) 처럼 커리큘럼의 특성에 따라 학교를 미리 정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살펴봐도 좋다. HBO의 경우 트렌디한 전공이 설치되기도 하지만 반면 학교/전공 통폐합도 자주 일어나니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확실한 프로그램(역사가 오래 된 프로그램이나, 잡 마켓에 타게팅을 정확하게 한 전공)을 고르는게 좋고, WO의 경우는 해당 전공 교수(Full professor)가 지금도 꾸준히 논문을 내고 있는지 먼저 검색해보고, 해당 프로그램의 석사/박사/포닥/조교수/부교수 등 모든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 (그리고 좋은) 논문들을 꾸준히 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막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이, 특히나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유학을 계획중인 학생들이 검색하기엔 어려운 내용이긴 하다….

대학원 과정 (주로 박사과정)
WO와 HBO 모두 석사과정이 있는데, WO의 석사는 박사과정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의 역할이 크고, HBO의 석사과정은 커리어 패스의 단계로 역할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석사, 연구석사, 전문석사, 특수석사(예 MBA)로 나누어 구분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석사 학위 간 구분은 큰 의미가 없고 WO에서 연구 석사 트렉을 밟았을 경우 박사 과정 진입이 더욱 쉽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일부 박사과정은 연구 석사 학위를 필수로 요구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박사학위 과정은 대학원이라기보다는 직장이며 실제 대부분 박사 포지션은 학교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일반 구직 사이트 구인공고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연봉이 정해져 있으며 3-5년짜리 연구 프로젝트에 고용되는 형태다. 연구와 티칭의 비율은 7:3정도. 미국과 달리 박사과정 코스웍은 거의 없고 박사과정에 들어오자 마자 연구물을 생산해야 한다. 어떻게 직장일 수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한다면, 일단 정교수를 포함한 기존 연구그룹이 국가 지원 연구비를 수주하면 해당 연구비에 3-5년정도 연구를 수행할 박사 후보생 연구원의 급여가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 박사 후보생은 이미 연구 방향이 정해진 단기 연구 프로젝트에 고용된 연구원이며, 학부 석사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하기도 하는 해당 학과의 동료로 인식된다. 자신이 참여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저널 출판에 적극 기여해야 하고 결국 이를 묶어 책으로 출판하면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따라서 대부분 자신이 직접 박사학위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 되며 기본적인 기초 연구는 이미 자신의 지도 교수과 동료들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쓴 제안서에 다 담겨있다. 대다수의 지도 교수들이 성실하게 함께 논문을 쓰기 때문에 논문 출판의 기회가 많다. 단 자신의 연구주제를 스스로 개척하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고, 석사과정에서 쌓은 연구 기본기가 평준화되지 못했다는 의견들 때문에 몇몇 대학들은 (미국처럼) 박사과정을 ‘대학원’에 편재하여 코스웤을 제공하기도 한다 (보통의 네덜란드 박사과정은 일만 있고 수업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유학생의 경우 박사과정에 들어오면 네덜란드 입국시 학생 비자가 아니라 일종의 취업 비자를 받고 박사기간 내내 국가가 정한 (꽤 넉넉한)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전공/학교에 따라, 혹은 당장 빈자리가 없어도 꼭 어딘가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싶을 경우 자비로 박사학위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역시 취업 비자를 받고, 급여는 없지만 오피스, 각종 시설 이용 권한, 학회 참석비 지원 등의 부수적인 지원은 받을 수 있다. HBO의 경우 Lector가 이끄는 연구 그룹 안에서 박사 학위과정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협력하는 WO 대학 한 곳의 Full professor가 공동 지도교수로 지정된다. WO의 경우 Full professor가 (연구 예산만 허락한다면) 꽤 자유롭게 박사 후보생을 선발 할 수 있다. 물론 위 내용은 학교/학과마다 차이가 있다.

델프트 공대가 정리한 ‘HBO와 WO 비교’ 자료(아래 바로가기 링크)를 참고해도 좋다.


네덜란드
교육이
한국보다
나은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때때로 난 교육 때문에 네덜란드로 왔다거나, 그 때문에 네덜란드에 정착했다는 말을 들으며 여러 챕터가 생략되었다고 느낀다. 한 나라의 교육을 다른 나라와 통째로 비교하는게 어떻게,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난 지금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도 한국과 비교란 걸 할 엄두도 안난다.

대신 네덜란드 대학이 다소 구시대적인 접근법을 가지고도 ‘교육’이라는 업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네덜란드 사회, 혹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알려진것과는 다르게) 그렇게 개방적이거나 관용적이지만은 않다고 느끼는데, 한편 교육이라는 행위 또는 학교를 경영하는 모든 프로세스에서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내는’ 교육이라는 업의 본질에 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잘 타협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부수적인 것들, 비 본절적인 것들은 언제든 재평가 하여 버릴 수 있는 과감함도 동시에 갖춘 것 같다. 아, 시대의 변화, 세대의 변화, 교육 방법의 변화에 교육 공간(인테리어 디자인, 설비 등)이 먼저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도 정치 (그로 인한 제도)의 산물이지 않을까? 교육을 바꾸려면 문화나 시대정신을 바꿀 게 아니라 그냥 법을 제대로 개정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또 하나, 내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 아이가 조금 더 아이답게 크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한 편으로 보면 좀 어리숙하달까…. 이 시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울 이런 어리숙함을… 초등학생들에게서도 보고, 중고등학생들에게서도 보고,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서도 본다. ‘공동체’, ‘우애’, ‘우정’ 같은 낡은 단어들이 아직 유효하다는 생각도 든다. 뭐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조금 뒤에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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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Conrad Tao X Caleb Teicher

New York Philharmonic at Steinway Factory, Featuring Conrad Tao and Caleb Tei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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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2018년 11월

핀란드 Tampere에 위치한 TAMK Proakatemia로 출장을 다녀왔다. Tampere는 Tilburg처럼 과거 섬유산업이 견인했던 도시라는데 지금은 젊은 기업들이 옛 공장 건물들을 채워가고 있다. TAMK는 학생 만 명 규모의 대학이고, Proakatemia는 그 중 선발된 1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직접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지역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본 캠퍼스에서 1년을 보내고 Proakatemia로 오면 강의와 시험은 사라지고 Proakatemia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따라 나머지 3년을 보낸다. 학생들은 열정적이었고, 선생들은 차분했다. 그들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의 학습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공동체성을 발견하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에 들어갈 때 우리는 먼저 신고있던 신발을 벗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가 신발을 벗는 바로 그 순간에 거의 다 담겨있다고도 생각했다. 조금, 영적이었다.

연이어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여러 대학과 회사들을 방문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의논했다. 출장을 다녀오자 마자, 이번엔 우리 학교를 방문한 한국 손님들과 일주일을 보냈다. 네덜란드 Entrepreneurship 교육을 살펴보는 일종의 위탁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새로 알게 된 좋은 사람들 덕에 힘을 얻었다.

Strategic Marketing 이란 과목을 맡게 되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마케팅 과목에서 전통적으로 다루는 이론이나 모델이 처음 소개된 논문이나 책을 읽고 있다. 예를 들어 Marketing Mix에 대한 개념은 1964년 Neil H . Borden을 통해서인 것 같고, 같은 해에 Jerome E. McCarthy가 그 유명한 4P를 언급했나보다. 

우린 가능한 어른들께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잘 한다’는 표현이 추상적이지만, 존중하고, 존경하고, 자주 연락하고, 포옹하고, 자주 손을 잡고, 그분들이 하시는 일이 있으면 작게나마 도움이 되려고 한다. 어른들은 종종 나와 아내에게 ‘자식보다 너네가 낫다’ 고 하시는데, 정작 우린 부모님께 소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건 단순히 멀리 살아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한편, 부모님들 곁에는 우리보다 부모님을 잘 챙기는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있단다. 어쩌면 부모님들도 그들이 자식보다 낫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는 키워준 부모님을 멀리 두고 다른 어른들을 부모처럼 섬기며 살고 있을까…

TAMK Proakatem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