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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기와 3주

둘째가 태어나고 3주가 흘렀다. 그래도 이번엔 시간이 흐르는 건 느낄 수 있다. 잊고 있었던, 아마도 가장 큰 난관은 한동안 삶에 빈틈이 없어진다는 것. 아기가 너무 어리면 내가 하는 일들 사이에 틈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틈이 나면 잠 자고 씻고 밥 먹는 원초적인 일에 써야 한다. 사실 우린 온갖 생산적인 일들을 이 빈틈을 통해 하고 있었던거다.

아기는 잘 자란다. 종종 이제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만큼 컸다고 얘기한다. 비가역적이다. 그러니 지구에 적응해야 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도 적응해야한다. 그러고 보면 엄마 뱃속은 우주보다 신비로운 곳인 듯. 여기, 지구에, 우리집에, 우리에게 온 걸 환영해^^

관계망

여기서 첫째가 태어났을 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실 워낙 정신 없던 때라 외로운 줄도 몰랐다. 둘째를 임신하고 태어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우리 삶이 단단한 관계망 안에 들어왔다고 느꼈다. 이웃들이 우체통에 넣어두고 간 축하 엽서와, 학교에서 보낸 꽃다발, 지인들의 메시지와 끓여다 준 미역국과, 물려받은 옷가지와, 오늘 어떤 학생이 준 할로윈 양말까지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

언제나

누군가와 누군가를 흉보고 싶다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하는게 좋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경우에 따라 누구의 편도 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은데, 이럴 때 변함 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내와 어머니뿐이다.

어떤 분

최근에 건너 건너 어떤 분을 알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그 분이 온/오프라인에 쓰는 글을 계속 읽고 있다. 그 안엔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배우고 생각할 거리가 충분하다. 예민한 관찰력, 좋은 품성, 풍성한 지식이 엿보이는 글들이다.  따로 메모하거나 저장했다가 강의 때도 자주 쓴다. 한 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이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무슨 책 제목같은 질문들을 쏟아놓고 몇 시간 차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다. 이런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영주

EU 영주권이 나왔다. 이건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일까.

최서진 | Seojin Choi
우리가 아이를 슬프게 해도 될까?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건 우리 시대 상식이 되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때리건, 장난 같은 꿀밤이든 회초리를 들었든 간에, 자극을 통해 행동을 교정한다는 식의 행동주의 유산은 벌써 사라져야 했다. 인류는 그런 방식이 결국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걸 느리고 처절하게 배웠다.

우리도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혼을 내는 것 자체, ‘훈육’이라 일컬어지는 엄한 꾸지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첫째 아이는 종종 무언가를 잘못해서 혼이 난 후에 슬프다고 한다. 어른들은 가끔 슬프지 않기 위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글쎄 과연 아이들도 그럴까. 우리가 자녀를 슬프게 해도 괜찮은 건지 정말 잘 모르겠다.

부모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은데, 우리가 이걸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다 아이가 그린 사람과 동물들이 활짝 웃고 있으면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다. 며칠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문 앞에 붙어 있는 아이 그림을 봤는데 역시 환하게 웃고 있길래, 그래도 우리 잘하고 있나 보다 하고 잠시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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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름이 끝났다.
가족과 함께한 거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

신입생

신입생들이 왔다. 20개 국가에서 온 80명. 전 교직원이 긴장과 기대감을 안고 이들을 맞았다. 난 네덜란드 대학의 이런 면이 참 좋은데, 매년 학생들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늘 친절한 건 아니고, 차차 서로 실망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린 이들을 기다렸고,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 이건 학과가 신입생 유치면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과 별개의 것인데, 그냥 새로운 학생들이 오니 반갑고 설레는 거다. 어쩌면 이게 네덜란드 교육의 힘일지도.

스무 명씩 4 클래스로 나뉘었는데 이들 중 한 클래스의 책임 선생이 됐다. 앞으로 4년 동안,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생활 전반을 살피고 도와야 한다. 이들의 졸업식에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퇴근하고 오니 아내는 아이를 재우러 2층에 올라갔고, 1층 아내 노트북 화면 보호기만 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로 아이 사진이 나오는데, 사진만 보고 있어도 피로가 풀렸다. 아이를 재운 아내가 내려오고 나서도 둘이서 한참 화면 보호기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삶에 큰 힘을 얻는다.

2015년에 태어난 아이는 오늘부로 초등학교 1학년이 되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점심시간에 아이를 다시 집에 데려와서 밥을 먹이고 잠시 쉬었다가 오후 수업에 다시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하루 네 번씩 학교 앞에 가야 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내는 잠시 집에 데려와서 밥 먹이고 다시 보내는 게 은근 좋았다고 했다. 밥을 다 먹은 아이는 그림을 그리고 책도 봤다가 소파에서 잠시 뒹굴거린 후 다시 학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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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내가 감당하기 힘든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가고, 시작된다. 정신을 차려보니 8월이다. 여전히, 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한채, 호인이고 싶었으나 아마도 호불호가 선명히 갈리는 사람으로 마흔 문턱을 넘었다. 지난 몇 달, 내 잘못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나를 뜯어 고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지만, 일상은 시시콜콜한 것들만으로도 금새 가득 채워지고, 밤마다 찾아오는 피곤과 부채의식을 뒤이겨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면 또 괜찮은 하루, 괜찮은 나를 기대하곤 했다. 나를 배반하는 건 언제나 나였다.

뜨거운 여름이다. 작년처럼, 갑자기 찬 바람이 불면 겨울이 오겠지.

본교로 이동하게 되었다. 아인트호벤 캠퍼스에 독립되어 있던 경제/경영 관련 학과들이 단일 학부(Fontys School of Business & Communication)로 재편되는데, 올 9월 처음 유학생을 받기 시작하는 커뮤니케이션 전공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정든 동료, 학생들을 떠나는 건 아쉽지만 더 안정적인 조건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개인적으로는 기쁘고 감사하다.
학교/입학 관련 문의는 –> h.choi@fontys.nl

아이와 뒷뜰 의자에 앉아서 지나가는 비행기들을 봤는데 제대로 하늘을 본게 언젠가 싶어 놀랬다. 저녁을 먹고 약간 나른할 때 아이를 부르면 내 무릎에 오래 앉아 있는데, 여름이 가기 전에 자주 같이 하늘을 봐야겠다.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지만, 사진으로 찍어두지 않으면 아마 서로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아내가 다시 가게를 열었다. 육아노동의 로드는 여전하고, 만삭에 곧 둘째까지 태어나는데다, 그간 엇비슷한 샵들도 생겼고, 지금 공부하는 것, 앞으로 공부할 것들로 바쁘겠지만, 결국 아내는 자기를 닮은 가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잘 꾸려갈거다. 언제나 화이팅!

아이의 생각이 자라는게 눈에 보인다. 마음과 행동이 생각보다 복잡하고 엉뚱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 부끄러운 것과 무서운 것에 대해서도 점점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표현하는데, 때때로 아이가 느끼는 창피함이나 두려움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한다. 우선 자주/많이 칭찬하고, 안아주고, 기다리고, 이해하고 함께 무언가를 하려고 노력중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이제 겨우 태어난지 4년이다. 내가 짐작했던 것보다 이런 순간들은 훨씬 빨리 찾아온다.

여름 휴가가 끝났다. 그동안 아이는 잠들기 전마다 하루가 너무 재미있었다고 했다. 노는게 제일 좋은 아이에게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다.

소중한 이가 갑자기 떠났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페북을 포함한 여러 공간에서, 여러 방식으로 애도를 표했다. 더러는 부주의했고, 심지어 슬픔을 전시하듯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히려 가까웠던 사람들은 별 말이 없었다. 사실 나와 아내도 할 말이 없었다. 떠난 이에게 할 수 있는 말도, 남은 가족에게 전할 위로의 말도 잘 찾지 못했다. 그냥 왜 그렇게 빨리 가야 했는지… 그의 죽음이 남긴 것은 무엇인지, 산다는 건 무엇이고 앞으로는 어떠해야 할지 계속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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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교육과정

네덜란드 대학 교육을 중심으로


교육과정
개관

초등과정

초등학교는 4살에(한국 나이 5살) 1학년을 시작하여 8학년까지 다닌다. 네덜란드 교육과정은 초/중등과정과 대학 진학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어떤 레벨의 중등-대학 연계 과정으로 진학할 것인지, 그래서 최종적으로 어떤 레벨의 대학에 진학할 것인지 초등학교 졸업 전에 어느 정도 미리 정해진다. 초등 교사가 초등과정 내내 쌓인 데이터를 평가하여 선언하듯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다수 학생/학부모들은 이를 수용하는 분위기다.

중등과정 (한국의 중고등학교에 해당) – VMBO, HAVO, VWO

중등 과정은 12살부터 짧게는 4년, 길게는 6년이다. 중고등학교를 마치는 시기가 다른 이유는 앞으로 진학할 대학의 레벨에 따라, 예비과정 없이 바로 졸업하거나, 1년 또는 2년 동안 대학 예비과정을 이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하였듯이 중등 과정은 학생 희망보다는 데이터를 중심으로 레벨이 정해지며, 해당 과정의 졸업 시험 과목들을 다 통과할 경우 연계된 레벨의 대학 입학 자격이 (거의) 자동으로 주어진다. 대학들은 (실제로 꼭 그렇지도 않고 학교나 전공마다 차이가 있지만) 학생 선별을 위한 별도의 과정 없이 원서를 넣은 학생들은 다 받아야 한다. 중등과정을 레벨별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VMBO라는 중등 과정을 4년 동안 다니면 MBO 레벨의 대학으로 (일부는 HBO 레벨 대학으로 진학 할 수도 있다), HAVO라는 과정을 5년 만에 졸업하면 HBO 레벨로, VWO라는 과정을 6년 동안 다니고 졸업하면 WO 레벨에 진학할 수 있다 (일부 VWO 졸업생들은 HBO 레벨로도 간다). 앞서 적었듯이 개인적인 이유 또는 노력 여부에 따라 자신의 과정을 중간에 바꿀 수도 있다. TTO라고 불리는 이중언어 학교들은 국가가 인정하는 네덜란드 공교육 트렉이지만 교육과정의 다수를 영어로 진행한다. 흔히 TTO가 VWO레벨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TTO는 레벨의 구분이 아니며, TTO 중에 VMBO, HAVO, VWO 레벨이 있을 뿐이다. 또 하나, 김나지움(gymnasium)이라 불리우는 과정을 VWO의 상위 과정(가장 공부 잘 하는 학생들이 가는 과정)으로 여기는 사람도 많은데, 김나지움은 일반적인 VWO 레벨 (atheneum이 정확한 명칭이다)에 라틴어와 현대 그리스어가 추가된 과정이다. Atheneum 학생들에 비해 고전언어 두 가지를 추가로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와 공부 시간을 조금 더 잘 분배해야 하니 어떤 의미로는 gymnasium 학생들이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참고로 TTO가 gymnasium 커리큘럼을 구성할 경우 이미 영어와 네덜란드어 두 언어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고전어는 라틴어만 배우는 경우가 많다.

TTO 관련 링크
https://www.nuffic.nl/onderwerpen/alle-tto-scholen-in-nederland

고등과정 – MBO, HBO, WO

네덜란드에서 MBO는 대학보다는 직업 훈련과정으로 보고, 법적으로도 학교 이름에 “University”란 단어를 사용할 수 없다. 개념상 한국의 전문대 또는 공공 직업훈련기관에 가깝다. 이전 설명처럼 VMBO라는 중등 과정을 마치고 진학하는데, ‘대학 예비과정’에 해당하는 과정 없이 4년 만에 중등과정을 마치면 바로 MBO로 진학할 수 있다. 즉 MBO의 교육 커리큘럼은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한 학생이 곧바로 따라가기에 무리 없도록 구성된다. 단 MBO 과정에서 추가 과목을 이수한 학생들(대부분 1년을 더 보낸다)은 HBO로 진학이 가능하다.
네덜란드에서 대학 교육은 흔히 ‘실무중심대학’이라 불리우는 HBO, ‘연구중심대학’이라 불리는 WO로 다시 구분된다. 앞서 적었듯이 중등과정에서 HAVO 레벨로 졸업하면 HBO, VWO를 나왔다면 WO로 진학할 수 있다. HBO는 보통 4년 과정이고, WO는 3년 과정이다. 얼핏 WO의 교육이 더 짧아보이지만, HBO 학생들의 경우 중등 5년 과정 중 마지막 학년을, WO의 경우 6년 과정 중 마지막 두 학년을 대학 준비 과정으로 썼다고 보면, 같은 해에 태어난 학생들의 최종 졸업시기는 같아진다. 단 WO의 경우 학부/석사 통합과정의 형태를 띤 곳이 많고, 의대처럼 전공에 따라 4년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하며, 일부 HBO는 3년 만에 졸업장을 딸 수 있는 우등 코스를 두기도 하기에 모든 학교/학과에 일괄 적용되는 설명은 아니다. HBO 학생들은 1학년을 끄트머리에 Propaedeutic Assessment라는 시험을 치르는데, 이걸 통과하고 WO에서 공부하고 싶다면 WO 1학년으로 다시 대학 생활을 시작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HBO에서 1년을 보내고 Propaedeutic Assessment를 통해 WO로 올라 오면, 같은 해에 태어나 VWO 과정에서 1년을 더 보내고 WO로 바로 진학한 고등학교 동창들과 같은 교실에서 만날 수도 있다. HBO입장에서는 좋은 학생들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나가는 길을 좁게 만들고, WO의 입장에서는 WO의 배타적 지위를 유지하고 싶기에 들어오는 길을 좁게 만들어 놓아서 이런 케이스가 흔하지는 않지만 불가능 한 건 아니다.


대학의 레벨을 MBO, HBO, WO로 나누는 개념적인 기반은 특정 직업군, 혹은 특정 포지션이 요구하는 논리(수리)적 사고력과 어휘력, 글쓰기 능력, 외국어 능력 등에 차이가 있다는 가정이다. 네덜란드는 이런 수준 구분에 관해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 같은데, 현실 세계는 복합하고, 더 복잡해지고 있으며, 모든 ‘구분짓기’에 대해 한 번쯤 반문하는 시대에 살다 보니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 시스템이란 비판이 늘고 있다. 여기에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특정 교육 철학이나 종교에 바탕을 둔 특수한 학교들도 존재하고, 외국인 학교 졸업생, 해외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유입되는 학생들까지 더해지면서 변수가 너무 많아지고 있다. 대학 현장에서 일하다 보면… 수준 높은 어휘력과 글쓰기 능력이 고등 교육에서 필요한 사고 능력과 향후 좋은 학습 결과를 예측하는 가장 중요한 Indicator이며, 저런 구분이 어떤 측면에서 유효하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너무 어린 시기에 학교(정확히는 몇몇 교사)에 의해 진로와 향후 인생이 고착될 가능성에 대한 비판도 많은데, 교육 시스템 자체만 본다면 꽤 유연하고 자신의 진로를 여러번 수정할 기회(흔히 뒷문은 언제나 열려있다고들 한다)를 제공하고 있다.


대학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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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무중심대학(HBO)과 연구대학(WO)의 차이?
• 차의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사라지는 중
• 연구중심대학(WO)과 교육중심대학(HBO)로 번역하는게..
• 그래도 같다고는 할 수 없음

WO, HBO 양쪽을 오가며 일하는 개인적인 경험 + 보태어 동료, 학생, 기업이나 연구소에서 일하는 분들의 의견을 들어보면, 이 둘의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차이가 선명하지 않고, 그마저 사라지는 추세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HBO와 WO를 가르는 가장 큰 분기점은 구성원이 peer-reviewed 저널에 연구물을 출판할 수 있는가였는데, HBO들이 Lector라는 연구중심 교원을 두게 되면서 이러한 구분이 더욱 희미해졌다. 교육 목적/방법론 차원에서도 실무 중심, 학문의 실용성, 취업 친화적 교육, 기업가 정신, 협력학습 등 HBO가 간판으로 삼던 것들을 WO 역시 전면에 내세우면서 경계가 더욱 희미해지고 있다. 사실 비슷한 학과들이 HBO와 WO 양쪽 모두에 설치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는데, 예를 들어 종교학, 경영학, 법학, 건축학은 HBO에도 있고 WO에도 있다. 심리학도 양쪽에 다 있고, 가장 실무적인 교육을 할 것 같은 MBA나 건축학은 WO가 강세고, 노인학, 종교학, 사회복지학 같이 연구 기반일 것 같은 프로그램은 HBO가 더 잘 하고 있다. 최근 채용되는 선생들의 프로필을 보면 HBO는 박사 학위자를 선호하고, WO는 소위 네트워킹에 능한 실무형 학자를 선호하면서 이마저도 서로의 차이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다. 복잡 미묘하고 계속 변화중인 이슈랄까.


HBO와 WO의 구분에 대한 내 최선의 이해는 이렇다. 사실 HBO, WO 둘 다 실무 중심적이다. HBO만 실무 중심이 아니라, WO 역시 인류 역사에서 학문 영역으로 굳건히 인식된 몇몇 분야 (예를 들어, 심리학, 의학, 물리학, 수학, 화학, 생물학, 언어학, 신학 등)의 ‘활자화된 연구물 (주로 저널에 실리는 아티클) 출판’이라는 복잡한 실무를 잘 수행할 ‘연구자’를 키우는 실무 교육을 하고 있다. 따라서 둘 다 실무 중심이란 면에서 HBO를 “실무중심대학”이라고 번역하는 건 적합하지 않고, 굳이 구분을 해야 한다면 차라리 ‘연구중심대학(WO)’과 ‘교육중심대학(HBO)’으로 번역하는게 낫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한국 대학과 네덜란드 대학을 같은 선상에 비교하려는 시도는 가급적 안 하는것도 좋겠다. 내 생각에 한국 대부분의 대학은 HBO, WO, MBO가 마구 섞인 형태고 (이게 나쁘다는 말은 아님), 일부 대학 일부 학과들만 WO와 같은 연구 중심 실무 교육을 하고 있을 뿐 대부분은 HBO와 MBO가 혼합된 형태라 생각된다.


물론 HBO와 WO가 완전히 같다고는 할 수 없다. 다른 측면에서 본다면, WO 졸업생들이 훈련받은 비판적 사고능력과 Validity 또는 Reliability가 높은 글쓰기 능력은 향후 커리어에서 WO 졸업생들에게 더 높은 (‘더 좋은’과는 약간 궤가 다름) 기회를 제공할거라 생각한다. 특히 데이터 기반 사회를 살아가는 현 세대에게 있어 각종 데이터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예리하게 해석하여 실무 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은 더 이상 일부 전공에 국한된 역량이 아닐텐데, ‘정확성’과 ‘논리적 절차’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 사고 기반이 약한 HBO의 다소 무른 교육은 WO와 비교시 손쉽게 경쟁 열위에 머무는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그간 HBO의 교육이 Validity 또는 Reliability에 대한 강조를 하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지금까지 실제 실무 현장 (특히 일반 기업)에서 그토록 높은 수준의 과학적 사고를 요구하지 않았고, 과거 HBO의 교수진들 역시 그런 종류의 업무를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데이터가 세상을 구할거란 시대에 WO는 태생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비슷한 전공이 HBO와 WO 모두에 있을 때 졸업 후 받게 되는 디플로마의 배타적 특성(예를 들어 수여되는 자격)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또한 HBO는 WO가 가진 인프라를 쫒아가기 어렵다. 학교의 시설, 캠퍼스의 크기, 구성원 수 등에서 WO는 이미 규모의 경제를 이루었다. WO가 국가 수주 연구비를 독식하던 지난 몇 십년 동안 이루어진 이러한 물리적 덩치 차이는 앞으로 쉽게 극복되기 어려울 것 같다. 다수의 HBO는 미국의 칼리지처럼 작고 개성있는 대학으로 자신을 포지셔닝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게 마케팅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포지셔닝이기도 하다.


한편, 학생들이 느끼는 교육의 질 측면에서 HBO가 WO를 앞서고 있는 부분들도 있다. WO의 교수진들은 티칭에 대한 요구치가 적고, 대부분 학부 수업에서 튜터와 논문지도 역할을 하고 있는 박사 과정생들은 티칭 경험이 부족하다. WO들이 협력학습, 산학협력, 학생중심교육, 기업가정신 등 그간 HBO가 간판으로 걸던 교육 키워드를 기존 교육과정 안에서 풀어내려고 할 경우, 첫 째는 ‘최신 이론’과 ‘당장 써 먹을 수 있는 실무’가 당장에 만날 수 없는 수 많은 본래적 지점들 때문에, 둘 째는 그간 교육 자체에만 집중해 온 HBO가(혹은 그 선생들이) 축적한 ‘가르침’의 노하우 때문에 WO의 수업이 삐걱거리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선생들의 호칭과 타이틀도 조금 다르다. WO의 랭킹은 Tutor, Lecturer, Assistant Professor, Full professor (Full professor 중 일부가 Dean을 겸직) 등으로 나누어지고. HBO는 Tutor, Lecturer, Senior Lecturer, Lector, Manager, Director, Dean 등의 포지션을 사용한다. 참고로 HBO의 Lector는 WO의 Full Professor에 해당하며, 네덜란드에서 자타가 공식적으로 ‘교수’라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은 HBO Lector와 WO Full Professor 뿐이다. HBO의 일부 Lecturer, Senior Lecture는 WO의 Assistant Professor와 같은 랭킹이며, 급여의 측면에서 볼 때 WO의 Associate Professor에 해당하는 포지션은 HBO에 없다.

 

MBO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일까?
내 개인적인 견해일지 모르나, 앞서 적었듯이 네덜란드는 문해력, 비판적 사고력을 포함한 논리적 글쓰기 능력, 더 나아가 정보 수집-해석-분석 능력의 필요와 정도에 따라 현실 직업 세계를 계급화하는 경향이 있다. 고등교육의 레벨 구분은 이런 계급적 프레임에 기반한다. 가만히 몇 시간 앉아서, 특정 분야 주요 논문 몇 개를 리뷰하고, 자기 생각을 간명하고 논리적인 문장으로 풀어냈을 때 지적 성취감을 느끼는… 그런 걸 오랜 기간 반복할 수 있는 능력이나 기질이 ‘공부 잘 하는’ 것이라면 MBO는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긴 하다. 소위 노동/기술 집약적이고, 반복과 경험의 누적으로 expertise를 획득하는 직업군을 위한 교육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느끼는 최근 MBO의 포지셔닝은 좀 색다르다. 우리 학교 옆에 있는 MBO의 경우 비행기 정비에 특화된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데, 대형 트럭에 실린 실습용 전투기들이 실습장을 드나드는 모습은 장관이다. 그 복잡한 기계를 열어놓고 또 복잡한 정비 도구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그 학과 학생들과, 노트북에 Business Model Canvas 템플릿 하나 달랑 열어놓고 온갖 개념과 추상을 우겨넣기 바쁜 우리 학과 학생들을 비교하다 보면 누가 소위 ‘고등’교육을 받고 있는지 엇갈릴 때가 있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 MBO는 ‘실용교육’의 실현 면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구축하고 탄력적인 커리큘럼을 무기로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HBO가 WO와 영역다툼을 하는 사이, MBO는 실무형 교육의 정점으로 다가서고 있고, HBO는 본래의 정체성을 잃고 있다는 위기감이 (조금) 느껴진다.


네덜란드는 명문대가 없다?
• 살아 남은 학교들은 모두 좋은 학교
• 그러나 더 좋은 프로그램(전공)은 분명히 있음


네덜란드 대학은 모두 명문대라거나, 랭킹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는데 실제로는 안 그렇다. 좋고 나쁜 학교가 있고 (단 나쁜 학교는 빠르게 사라진다), 상대적으로 조금 더 나은 프로그램(전공)이 분명히 있다. 사실 순위와 평점에 이토록 예민한 대학 교육 시스템이 있을까 싶을만큼 내/외부 평가에 민감하고 그 영향력은 가혹하기까지 하다. 학생 입장에서 좋은 학교/학과를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우선 얼마나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할 것 같다. 경영대, 의대, 공대와 같은 넓은 범주 말고, HBO와 WO에 설치된 학과들의 세부 프로그램을 가능한 많이 살펴보는게 좋다. 시야를 넓히고, 본인에게 매력적인 전공을 계속 찾다 보면, 네덜란드 대학 교육이 건텐츠 면에서 얼마나 다양한지 놀라게 될거다. WO는 여전히 전통적인 전공들이 주를 이루지만, HBO에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춘 독특하고 유연한 프로그램들이 많다.


물론 학교마다 내용 또는 방법 면에서 전통적으로 강세인 곳이 있으니 이를 먼저 살피는 것도 좋다. 의대까지 PBL을 하고 있는 Mastricht (WO) 대학이나, 강의-시험으로 이어지는 전통적 수업-평가 방식을 탈피하고 있는 Avans (HBO) 처럼 커리큘럼의 특성에 따라 학교를 미리 정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살펴봐도 좋다. HBO의 경우 트렌디한 전공이 설치되기도 하지만 반면 학교/전공 통폐합도 자주 일어나니 프로그램의 정체성이 확실한 프로그램(역사가 오래 된 프로그램이나, 잡 마켓에 타게팅을 정확하게 한 전공)을 고르는게 좋고, WO의 경우는 해당 전공 교수(Full professor)가 지금도 꾸준히 논문을 내고 있는지 먼저 검색해보고, 해당 프로그램의 석사/박사/포닥/조교수/부교수 등 모든 구성원들이 얼마나 많은 (그리고 좋은) 논문들을 꾸준히 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막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이, 특히나 한국에서 네덜란드로 유학을 계획중인 학생들이 검색하기엔 어려운 내용이긴 하다….

대학원 과정 (주로 박사과정)
WO와 HBO 모두 석사과정이 있는데, WO의 석사는 박사과정으로 가기 위한 전단계로의 역할이 크고, HBO의 석사과정은 커리어 패스의 단계로 역할하는 경우가 많다. 일반석사, 연구석사, 전문석사, 특수석사(예 MBA)로 나누어 구분하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석사 학위 간 구분은 큰 의미가 없고 WO에서 연구 석사 트렉을 밟았을 경우 박사 과정 진입이 더욱 쉽다는게 가장 큰 차이점인 것 같다 (일부 박사과정은 연구 석사 학위를 필수로 요구하기도 한다).


네덜란드 박사학위 과정은 대학원이라기보다는 직장이며 실제 대부분 박사 포지션은 학교 홈페이지 뿐만 아니라 일반 구직 사이트 구인공고를 통해 지원할 수 있다. 연봉이 정해져 있으며 3-5년짜리 연구 프로젝트에 고용되는 형태다. 연구와 티칭의 비율은 7:3정도. 미국과 달리 박사과정 코스웍은 거의 없고 박사과정에 들어오자 마자 연구물을 생산해야 한다. 어떻게 직장일 수 있는가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한다면, 일단 정교수를 포함한 기존 연구그룹이 국가 지원 연구비를 수주하면 해당 연구비에 3-5년정도 연구를 수행할 박사 후보생 연구원의 급여가 포함되어 있다. 네덜란드 박사 후보생은 이미 연구 방향이 정해진 단기 연구 프로젝트에 고용된 연구원이며, 학부 석사 학생들의 논문을 지도하기도 하는 해당 학과의 동료로 인식된다. 자신이 참여한 연구 프로젝트의 결과물로 저널 출판에 적극 기여해야 하고 결국 이를 묶어 책으로 출판하면서 박사 학위를 받는다. 따라서 대부분 자신이 직접 박사학위 주제를 정하지 않아도 되며 기본적인 기초 연구는 이미 자신의 지도 교수과 동료들이 연구비를 지원하면서 쓴 제안서에 다 담겨있다. 대다수의 지도 교수들이 성실하게 함께 논문을 쓰기 때문에 논문 출판의 기회가 많다. 단 자신의 연구주제를 스스로 개척하는 훈련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고, 석사과정에서 쌓은 연구 기본기가 평준화되지 못했다는 의견들 때문에 몇몇 대학들은 (미국처럼) 박사과정을 ‘대학원’에 편재하여 코스웤을 제공하기도 한다 (보통의 네덜란드 박사과정은 일만 있고 수업은 없다). 이러한 이유로 유학생의 경우 박사과정에 들어오면 네덜란드 입국시 학생 비자가 아니라 일종의 취업 비자를 받고 박사기간 내내 국가가 정한 (꽤 넉넉한) 급여를 받는다. 그러나 전공/학교에 따라, 혹은 당장 빈자리가 없어도 꼭 어딘가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싶을 경우 자비로 박사학위를 할 수도 있다. 이 경우 역시 취업 비자를 받고, 급여는 없지만 오피스, 각종 시설 이용 권한, 학회 참석비 지원 등의 부수적인 지원은 받을 수 있다. HBO의 경우 Lector가 이끄는 연구 그룹 안에서 박사 학위과정을 할 수 있지만 대부분 협력하는 WO 대학 한 곳의 Full professor가 공동 지도교수로 지정된다. WO의 경우 Full professor가 (연구 예산만 허락한다면) 꽤 자유롭게 박사 후보생을 선발 할 수 있다. 물론 위 내용은 학교/학과마다 차이가 있다.

델프트 공대가 정리한 ‘HBO와 WO 비교’ 자료(아래 바로가기 링크)를 참고해도 좋다.


네덜란드
교육이
한국보다
나은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때때로 난 교육 때문에 네덜란드로 왔다거나, 그 때문에 네덜란드에 정착했다는 말을 들으며 여러 챕터가 생략되었다고 느낀다. 한 나라의 교육을 다른 나라와 통째로 비교하는게 어떻게, 얼마나 가능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난 지금 내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교육에 대해서도 한국과 비교란 걸 할 엄두도 안난다.

대신 네덜란드 대학이 다소 구시대적인 접근법을 가지고도 ‘교육’이라는 업의 본질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는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네덜란드 사회, 혹은 네덜란드 사람들이 (매체를 통해 알려진것과는 다르게) 그렇게 개방적이거나 관용적이지만은 않다고 느끼는데, 한편 교육이라는 행위 또는 학교를 경영하는 모든 프로세스에서 ‘독립적인 사회 구성원을 만들어내는’ 교육이라는 업의 본질에 관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잘 타협하지 않았던 것 같다. 대신 부수적인 것들, 비 본절적인 것들은 언제든 재평가 하여 버릴 수 있는 과감함도 동시에 갖춘 것 같다. 아, 시대의 변화, 세대의 변화, 교육 방법의 변화에 교육 공간(인테리어 디자인, 설비 등)이 먼저 발빠르게 대응한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묻는다면, 사실 잘 모르겠다. 아마도 정치 (그로 인한 제도)의 산물이지 않을까? 교육을 바꾸려면 문화나 시대정신을 바꿀 게 아니라 그냥 법을 제대로 개정해야 한다고 믿는 편이다.


또 하나, 내 아이가 자라는 걸 보면 아이가 조금 더 아이답게 크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한 편으로 보면 좀 어리숙하달까…. 이 시대, 특히 한국 사회에서 용납되기 어려울 이런 어리숙함을… 초등학생들에게서도 보고, 중고등학생들에게서도 보고, 내가 가르치는 대학생들에게서도 본다. ‘공동체’, ‘우애’, ‘우정’ 같은 낡은 단어들이 아직 유효하다는 생각도 든다. 뭐 그런 면에서 네덜란드는 조금 뒤에 앞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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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18년 11월

핀란드 Tampere에 위치한 TAMK Proakatemia로 출장을 다녀왔다. Tampere는 Tilburg처럼 과거 섬유산업이 견인했던 도시라는데 지금은 젊은 기업들이 옛 공장 건물들을 채워가고 있다. TAMK는 학생 만 명 규모의 대학이고, Proakatemia는 그 중 선발된 1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직접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지역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본 캠퍼스에서 1년을 보내고 Proakatemia로 오면 강의와 시험은 사라지고 Proakatemia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따라 나머지 3년을 보낸다. 학생들은 열정적이었고, 선생들은 차분했다. 그들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의 학습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공동체성을 발견하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에 들어갈 때 우리는 먼저 신고있던 신발을 벗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가 신발을 벗는 바로 그 순간에 거의 다 담겨있다고도 생각했다. 조금, 영적이었다.

연이어 한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여러 대학과 회사들을 방문하면서 함께 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의논했다. 출장을 다녀오자 마자, 이번엔 우리 학교를 방문한 한국 손님들과 일주일을 보냈다. 네덜란드 Entrepreneurship 교육을 살펴보는 일종의 위탁 연수 프로그램이었다. 오래 알고 지낸 좋은 사람들에게 감사했고, 새로 알게 된 좋은 사람들 덕에 힘을 얻었다.

Strategic Marketing 이란 과목을 맡게 되었다. 수업을 준비하면서 마케팅 과목에서 전통적으로 다루는 이론이나 모델이 처음 소개된 논문이나 책을 읽고 있다. 예를 들어 Marketing Mix에 대한 개념은 1964년 Neil H . Borden을 통해서인 것 같고, 같은 해에 Jerome E. McCarthy가 그 유명한 4P를 언급했나보다. 

우린 가능한 어른들께 잘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잘 한다’는 표현이 추상적이지만, 존중하고, 존경하고, 자주 연락하고, 포옹하고, 자주 손을 잡고, 그분들이 하시는 일이 있으면 작게나마 도움이 되려고 한다. 어른들은 종종 나와 아내에게 ‘자식보다 너네가 낫다’ 고 하시는데, 정작 우린 부모님께 소홀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이건 단순히 멀리 살아서 생기는 문제는 아니다. 한편, 부모님들 곁에는 우리보다 부모님을 잘 챙기는 비슷한 또래 사람들이 있단다. 어쩌면 부모님들도 그들이 자식보다 낫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왜 우리는 키워준 부모님을 멀리 두고 다른 어른들을 부모처럼 섬기며 살고 있을까…

TAMK Proakatem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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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10년

벌써 10년.
한 팀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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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의 유통기한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슬픈 일이 생길때면, 난 이 슬픔의 유통 기한에 대해 생각한다. 적어도 어느 동안은,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농담이나 누군가의 사사로운 일상을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그 역시 내가 슬픔을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 비판하겠지만.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슬픈 일들이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아닌 사람들이 남기는 글을 읽으며 난 피로와 배신감을 느낀다. 되려 이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에 악인이 너무 많은건 아닐까 생각했다.

세월호가 가라 앉을 때 그 슬픔에는 기한이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난 금새 다시 웃었고, 일상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내게도 어떤 기한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짧았다. 나도 결국 그냥 타인이었던 걸까… 

내가 친구와 선생으로 여기는 많은 이들이 어제 오늘 많이 슬퍼하고 있다. 나도 한 마음이다.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슬픔의 유통기한과 상관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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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칭찬을 받고, 인기를 얻고, 높은 지위에 올라 세력을 가지게 될 때 사람들은 변했다. 유명세란 어떤 방향으로든 결국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대게 나쁘게 변했다. 한 명씩 등을 돌리고 거리를 두었지만 인파에 묻혀 유치하고 추잡한 언행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칭찬에 익숙해진다 느낄 때, 앞에 서서 말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란 말에 공감했다. 정말 마음은 별로 늙지 않았다. 그 때 설레었던 것들은 지금도 똑같이 그렇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냥, 몸과 마음의 간극을 넓히는 일일 뿐.

아내가 홈 인테리어 관련 커뮤니티에 전에 찍어 둔 집 사진과 짤막한 글을 올렸다. 최신 인테리어 정보가 가득한 곳에 수십년 된 물건들로 가득 채워진 집 사진을 올린것이다. 은근 궁금했다. 신기하다, 독특하다, 멋지다 정도의 반응을 예상했었는데 조회 수 2만을 넘기며 여러 댓글이 달렸고 남겨진 글을 읽으면서 실은 적잖게 놀랐다. 일단 꽤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가슴이 따뜻해진다거나, 마음이 편하다, 포근하다, 따뜻하다, 평화롭다, 소중하다, 힘이 있다, 깊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이 집이라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게 위로, 쉼, 혹은 치유와 같은 근원적이고, 심지어 영적이기까지 한 경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반짝이고 차갑고 가벼운 것들이 쉽게 담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떤 사람이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대체로 이야기를 잘 들었지만, 때때로 중간에 말을 끊었고, 실제론 직설과 독설이 뒤섞인 조언을 했다. 마음이 무겁다. 솔직함을 가장한 무심함. 결국 어떤 문제든 그건 아마도 당신이 스스로 풀어야 할거라는 무성의. 당장 아무 도움이 안되는 나를 변호하기 위한 방어. 차라리 요리를 했더라면, 아니면 어디 가서 맛있는 밥이라도 같이 먹었으면 이보다 나았을텐데.

아이와 보내는 시간은 재미있고 놀랍다. 거의 모든 것을 믿고 받아들인다. 요즘엔 내가 코끼리나 상어가 되었다가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 다시 아빠로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버지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는데, 서진이는 머리가 좋고 똑똑하니 상처를 주지 않도록 늘 조심하라고 하셨다. 언뜻 이해되지 않지만 일리가 있는 것 같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세계행복보고서 최신판이 공개됐다. 두 번째 챕터가 흥미롭다. 이민자(정확하게는 이민자의 자녀들)와 본토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행복지수에 큰 차이가 없었다. 달리 해석하면, 개인의 행복은 이민자든 현지인이든 간에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나라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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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2019년 1월

요즘 진저브래드맨에 푹 빠져있는 서진이와 과자를 만들었다. 지난주 쿠키맨을 직접 만들어보자며 파우더랑 장식용 설탕 튜브를 샀었는데, 오늘 보니 집에 버터가 없어서 아이와 슈퍼에 다시 다녀왔다. 버터를 손에 들고 핑크퐁 진저브래드맨 노래를 부르며 신나했다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모든 게 너무 좋다.

삼성전자 베네룩스 법인 마케팅팀과 부킹닷컴 암스테르담 본사 데이터 분석팀에서 손님들이 다녀갔다. 4학년 수업과 2학년 수업을 마무리하면서 특강과 함께 학생들이 수행한 프로젝트 심사를 부탁했었다. 강의를 듣고 보니 기업과 대학 연구실의 하는 일이 점점 비슷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탄탄한 가설 설정, 데이터 신뢰도, 꼼꼼한 실험 설계, 분석과 해석의 의미. 예전 같으면 대학원 연구방법론에서나 들을법한 표현들이 마케팅 관련 슬라이드에서 계속 이어졌다. 양쪽 손님 모두 학생들에게 “추측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데이터 기반 사회에서 효율과 효능의 정의가 달라지고 있는 듯

새해를 시작하고 며칠을 집 정리에 썼다. 1층과 다락을 오가면서 손에 잡히는 여러 물건들을 버렸고 이사 올 때 대충 마감했던 1, 2층 통로 바닥을 뜯어내고 다시 깔았다. 쓰레기장과 이케아 매장을 들락거린 며칠 동안 주차장 입구에 차가 길게 늘어서서 한참 기다려야 할 만큼 정말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버리고 사기 위해 붐볐다. 특이한 송구영신. 

지난 2년간의 로테르담 한글학교장 임기를 끝냈다. 정해진 임기가 있는 건 아니었지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사임했다. 아, 얼마나 많은 일이 있었던가. 어렵고 힘들고 즐겁고 보람된 시간이었다. 기념으로 (뜬금없이) 에스프레소머신 한 대를 샀다. 난 무엇을 배웠나:

  • 생각은 글로 표현될 때, 신념은 원칙이라는 틀을 갖출 때 의미가 있다.
  • 학교 교육에서 교사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은 안 써야지 – 그냥 학교 공동체 구성원은 모두 중요하다. 그저 교사와 수업의 quality assurance가 조금 더 까다로운 업무일 뿐.
  • 내실을 다지는 것과 그러했다고 평가받는 것, 그리고 밖으로 무언가를 보여주는 것은 연결된 일이다.
  •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 예를 들어 학예회 단상에 내 아이가 멀뚱하게 서 있기만 해도 마냥 좋은 부모들의 마음에 충분히 공감할 때 더 따듯한 ‘행사’를 기획할 수 있다.
  • 아마도 한글학교는 네덜란드어를 더 많이 가르쳐야 한다.
  • 예산안에는 그 조직의 철학이 드러난다.
  • 조직 운영에 뜨겁고 차가운 방식이 있다면, 지난 2년은 뜨겁고 건조했던 것 같다.
  • 피아를 구분해야 한다고 적을 만들 필요는 없다. 나의 가장 부족했던 지점들.
  • 아, 나도 양복 한 벌은 있어야겠다.

등등. 

SKY 캐슬을 즐겨 보며 나는 이 지엽적인듯 말초적이고, 맥락적인 듯 한데 보편 타당한 이야기, 또는 이걸 꼬박 꼬박 챙겨 보는 내가 매우 흥미로웠다. 감동도 없고, 그렇다고 또 대단한 재미나 주제의식도 없는 것 같은데… 그나저나 결국 이 드라마는 예서의 성장스토리인가!

 

이 사진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내 어릴적 사진 중 하나. 오른쪽은 내가 좋아하는 서진이 사진. 이걸 나란히 붙여보니, 나도 그 시절 부모님께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이였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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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집

이사 완료. 이제 여기가 우리 집. 

너른 뒷 마당이 있고, 거실에 앉으면 시원하게 하늘이 보이는, 나무 창틀이 멋진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