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화. 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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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중반. 요즘 세 가지를 줄이고 있다.
말. 화. 살.

가을

가을 색감.

요즘

정우와 유연석이 다시 부른 “너만을 느끼며”를 듣는데 막 아련하고 애틋하고 그렇다. 임현정이 부른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도 요즘 듣기 좋다.


8년 차 부부가 되던 날 근처 교회에 등록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기는 백일을 넘겼고 우린 비자를 연장했다. 어떤 지점을 통과하는 느낌.

지난주, 누군가와 꽤 먼 곳에 다녀왔다. 1박 2일동안 그는 어디서든 민첩하게 움직였다. 특히 타인을 위해 움직이는 게 몸에 밴 듯했다. 난 그가 움직이는 걸 보고서야 내가 가만히 서서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어떤 정당에 소속되어 공천 투표를 하기도 하고, 언론사와 정당에 후원금을 보내기도 한다 했다. 작게나마 살기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고, 차곡 차곡 스스로를 키워가고 있는 듯 했다. 정치와 교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기 앞서 난 이제껏 무얼 했나. 뭔가를 쓰고 말한 것? 복잡한 머리에 입만 산 채로 서른 중반이 되었다는 걸 깨달으니 몹시 부끄럽다. 난 희망은 물론 절망에 관해 이야기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부끄러움을 떨쳐내기 위해 뭔가를 하기 시작했는데 몸과 정신 모두 비만이라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찬 바람이 불면 먹는 간식 Appelbol. 통사과 한 개를 얇게 썰어 층으로 쌓고 가운데 설탕, 계피, 캐러멜을 섞어 채운 다음 페스트리로 겉을 싸서 오븐에 구워 만든다. 난 뜨겁고 진득한 바닐라 시럽을 얹어 카푸치노와 함께 먹는다. 잘 만든 Appelbol은 겉은 바삭하되 안쪽 사과는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포크로 잘릴 만큼 푹 익어 있고, 필링은 뜨겁게 녹아있다. 충분히 익혀야 한다. 오븐에서 조금만 일찍 꺼내도 영 맛이 덜하다. 뭔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됨됨이와 닮은 간식.

Good Bye, Friso Kramer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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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는 최근에 고압수은등의 사용을 금지했다. 2015년 들어 본격화된 더 읽기 »

아기와 함께(50-120일)

이쁜 엄마

메모모음

아기는 snooze 버튼이 고장 난 알람시계 같다. 더 읽기 »

Revisions

“Publish” 버튼을 누르긴 하지만, 논문과 달리 블로그 글은 두고 두고 계속 고치게 된다. 편집창 오른쪽 수정 기록을 보면 열 번 넘게 수정한 글도 많다. 사실 아무리 고쳐도 마음에 안 든다. 결국 절반 이상은 지워버리거나 비공개로 돌린다. 나머지도 군더더기, 어색한 단어, 오·탈자, 빈약한 생각, 꼬인 문맥 때문에 계속 고치거나 처음부터 다시 쓰다시피 해야 한다. 괜찮은 연습이지만 몇 번의 탈고로 일정 수준의 좋은 글을 꾸준히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내공이 부럽다.

무엇보다 답답한 건 재미도, 감동도, 유익한 정보도 없는 글을 써놓고 더 읽기 »

시월

아침

아내. 이른. 아침. 안개.

요즘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선물은 테이블 매트 두 장, 굵은 문어 다리 한 개, 호떡 다섯 장, 깻잎 통조림 두 개. 필요를 채워주고 마음을 가득 담아 선물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 고맙다.

아기는 이제 이불을 걷어차고, 한 손으로 머리를 긁고, 한숨을 쉬거나, 소리 내 웃을 수 있다. 오늘은 처음으로 혼자 침대에 누워 밤잠을 청했다. 그걸 문틈으로 지켜보다 울음이 터지면 뛰어들어가 안아주려고 서 있을 때 부모됨이 이런걸까 생각했다. 우리는 이렇게 자라고 있다.

블로그에 이상한 물건들 사진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사실 난 좋은 사람 못지않게 좋은 물건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더 읽기 »

아기와 50일의 기록

메모 모음

기저귀 황금 똥을 보며 물개 박수 치는 부모들이 왜 그랬는지 이해가 간다. 세상엔 직접 겪지 않고는 쉽게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한 달 동안 연달아 2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하루도 없는데, 처음 며칠 빼고는 크게 피곤하지 않다. 사랑보다 놀라운 몸의 적응력.

세상에 나와 13일 만에 외출을 했다. 우리는 뿌듯했지만, 서진이는 세 시간쯤 울었다.

모성애/부성애가 저절로 생기는 건 아닌 듯. 생각보다 강한 의지와 끈기, 공부, 체력, 탁월한 스트레스 해소법 같은 것들이 필요하다.

육아의 상황은 (꽤) 보편적이지만 일단 우리에겐 특수하다. 더 읽기 »

산책

Utrecht, Holland

 

유월일일

출산 예정일이다. 열 달 동안 뱃속 아이를 무사히, 즐겁고, 행복하게 키웠다. 우린 곧 삼총사가 된다. 두 발이 땅에 닿는 느낌이다.

풍요의 끝

80년대 초중반, 내가 나고 자란 마산 무학산에는 백운사란 절이 있었다. 절집 윗마당에서 계곡까지 긴 가지를 뻗은 큰 감나무가 있었는데 가을이 되면 나무가 온통 선홍색으로 뒤덮이곤 했다. 계곡 하얀 바위에 떨어지는 홍시들은 물감을 뿌리는 것 같았다. 그 나무는 내게 풍요의 상징이 되었다.

그런 풍요로움은 주변 곳곳에 있었다. 당시 우리 집은 밤나무 과수원 안에 있었는데, 여름과 가을에 걸쳐 밤나무엔 밤송이가 가득했다. 늦가을엔 머리 위로 떨어지는 밤송이들을 조심해야 했다. 개울에는 물방개, 물맴이, 소금쟁이, 개구리, 도롱뇽, 가재가 살고 있었다. 물맴이의 희한한 냄새, 배를 뒤집어 빨간 무늬를 드러내던 무당개구리, 아마도 색소결핍 때문이었겠지만 아이들에게 특별 대접을 받던 하얀 가재가 생각난다. 더 읽기 »

Montmartre

손님 오는 날

visitors

집에서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의외로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