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천국엔 헬멧이 없다?

자전거 천국이라 불리는 네덜란드에선 대다수의 사람들이 헬멧을 쓰지 않는다. 로드바이크를 타는 사람들이나 어린이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그냥 다닌다. 아이를 싣고 달릴 때조차 그렇고, 게다가 급하게 달리고, 신호에 앞서 나가고, 두 손 놓고 문자를 보내면서 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안전하게 자전거 타기 좋은 나라로 늘 손꼽힌다. 왜 일까?

1. 보행자와 차량 운전자 역시 평소 자전거를 즐겨 타거나 과거에 그랬던 경험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내가 보기에 네덜란드 사람들은 남녀노소 불문하고 자전거 운전(자)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즉 네덜란드에서 자전거는 모두에게 익숙하게 ‘받아 들여지고’ 있고 대다수가 엇비슷한 자전거 운전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어떻게 국민 대다수가 자전거를 타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바로 그 점이 헬멧 없이도 자전거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물론, 한때 모두가 보행자였음에도 운전석에 앉으면 보행자를 욕하고, 차에서 내리면 다시 운전자를 욕하는 게 보통의 심리라는 점에서 이 나라 사람들의 역지사지에 특별히 후한 점수를 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2. 어쩌면 이들은 스타일을 위해 헬멧을 포기했을 수도 있다. 머리 모양이 흐트러지는 걸 싫어할 것 같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나름 설득력이 있는 건, 네덜란드 사회가 겉치레를 싫어하는 대신 겉모습은 꽤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네덜란드인들에겐 (다소 획일적인 면이 있지만) 깔끔하고 멋진 것, 그런 곳, 그런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있는 듯 하다. 몰개성적으로 느껴질 만큼의 적당 보편 깔끔한 ‘더치 스타일’이 공간, 옷차림, 생각, 언어, 심지어 헤어스타일에서도 드러난다. 출근 할 때 자전거 헬멧에 납작하게 눌린 머리는… 어딘가 더치스럽지 않다.

3. 다소 재미있는 가능성으론, 헬멧을 착용하지 않게 된 자전거 문화 자체가 자전거 안전을 높일수도 있다. 몇몇 연구에 따르면 자전거 운전자가 헬멧을 착용했을 때 자동차가 자전거에 더 밀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헬멧의 보호구 역할이 운전자에게 일종의 안도감(혹은 안전불감)을 주기 때문이라는데, 이와 비슷하게 헬멧을 쓴 자전거 운전자가 위험한 상황을 자초할 확률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헬멧을 잘 착용하는 산악자전거와 로드바이크 운전자들의 사고 확률이 (당연히) 생활차보다 높게 나오는 걸 보면 일리가 있다. 헬멧 없이 달리도록 정착된 자전거 문화의 관성이 자전거 운전자의 안전을 기능적으로 높여줬을지도.

4. 자동차가 신호를 잘 지킨다. 신호가 애매한 상황에서 신호의 꼬리를 잡거나 먼저 출발하는 자동차도 매우 드물다. 자전거 입장에선 적어도 차가 내 앞을 위협적으로 가로질러 가지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이 있다 (그에 비해 자전거는 역주행이나 신호 위반이 잦다). 여튼 도로 위에서 이런 사소한 믿음이 사실 얼마나 대단한 것이던가.

5.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자전거들은 그렇게 빨리 달리지 않는다. 물론 급하게 다니는 건 맞다. 특히 퇴근 시간에는 정말 급하게 엉켜서들 달린다. 하지만 대다수 자전거들은 생활 자전거라 속도보단 편안한 주행을 위해 만들어진 자전거들이고, 그 중 다수는 기차역과 학교/직장을 오가는 아주 낡은 구식 자전거들이라 속도가 그렇게 빠르진 않다. 급하게 달려도 그렇게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

20140424-IMG_81382

보통 자동차는 열악한 조건에서 굳이 복잡한 도로에 나와 있는 자전거에 대해, 보행자는 인도로 다니는 자전거들에 대해, 자전거는 자전거 도로를 넘어 다니는 보행자들에 대해, 자전거를 타는 이들은 안전장구 없이 다니는 다른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늘상 불만이다. 도로 위 모두가 서로 미워하는 셈이다. 그에 비해 네덜란드의 자전거 도로는 늘 평화롭다. 네덜란드를 떠나면 이토록 자유롭고 멋진 자전거 생활을 다시 누릴 수 있을까? 서로 미워하지 않고, 크게 긴장할 것 없는 네덜란드인들의 도로 위 일상이 그리워질 날이 오겠지.


 

아래 글을 함께 읽어도 좋다. 괜찮은 포스팅이다.

WHY IT MAKES SENSE TO BIKE WITHOUT A HELMET

 

Meda Chair – Alberto Meda, Vitra

© Vitra

Designed by Alberto Meda

3층에 쓸 Meda Chair 구입. 공학적으로 정교한 물건들은 대부분 미학적으로도 훌륭하다. 스스로 엔지니어라 불리기 좋아하는 Alberto Meda가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 의자. 평범한 의자 10배는 족히 넘을 가격이지만, 10배쯤 좋은 의자. 아들 Francesco Meda는 저 큰 이름 “Meda”라는 산을 넘어설 수 있을까.

요즘

2019년 여름이 끝났다. 가족과 함께한 거의 모든 순간들이 소중했다.

신입생들이 왔다. 20개 국가에서 온 80명. 스무 명씩 4 클래스로 나뉘었는데 이들 중 한 클래스의 책임 선생이 됐다. 앞으로 4년 동안, 이들이 졸업할 때까지 학교생활 전반을 살피고 돕는 역할이다. 전 교직원이 긴장과 기대감을 안고 이들을 맞았다. 난 네덜란드 대학의 이런 면이 참 좋은데, 매년 학생들을 기다리고 기대한다. 늘 친절한 건 아니고, 차차 서로 실망도 하겠지만, 어쨌든 우린 이들을 기다렸고, 진심으로 환영하고 있다. 이건 학과가 신입생 유치면에서 좋은 결과를 낸 것과 별개의 것인데, 그냥 학생들이 오니 설레는 거다. 어쩌면 이게 네덜란드 교육의 힘일지도.

갑자기 인스타그램이 하고 싶어졌다. 더 읽기 »

Gispen 가구 마음껏 사용기

Gispen official logo © www.gispen.nl

 

네덜란드 학교, 도서관, 회사들은 좋은 책상과 의자를 구입하는데 정말 많은 돈을 쓰는 것 같다. 왜, 어떻게 그러는지 늘 궁금하다. 건축 회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 어느 사무소든 자신들이 설계한 건물에 싸구려 가구가 들어가는 걸 좋아할리 없을테니까. 내가 일하는 Fontys 대학 Rachelsmolen 캠퍼스의 경우, 건축회사 Mecanoo (델프트 공대 도서관을 설계했고, 요즘 Tilburg에서 가장 핫한 공간인 LocHal 인테리어를 맡은 회사)가 80년대 말에 지어진 강의동 “R3” 레노베이션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Gispen이 함께 작업했다고 한다. 덕분에 요즘 값비싼 Gispen 가구들을 마음껏 써보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라운지 체어는 Ellen 2 모델이고, 1층 그룹 활동 공간에 쓰인 가구들은 두 회사가 함께 디자인 한 Hubb 시리즈다. 보통 세트당 일반 소비자 가격이 몇천유로다.

 

더 읽기 »

STB Racing pigeon clock

비둘기 경주에서 사용된 시계라는데, 비둘기 경주라는 게 있는지 이번에 알았다. 수집가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는 저기 달린 시계가 Swiss Made라는 것. 탁상시계로 놓고 쓰기엔 확실히 거대하지만 안될 건 또 뭔가 싶어서 구입.

요즘

내가 감당하기 힘든 여러 일들이 일어나고, 지나가고, 시작된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8월이다. 여전히, 난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한채, 호인이고 싶었으나 아마도 호불호가 선명히 갈리는 사람으로 마흔 문턱을 넘었다. 지난 몇 달, 내 잘못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며 나를 고치고 싶다는 생각에 온통 사로잡혀 있었지만, 일상은 시시콜콜한 것들만으로도 금새 가득 채워지고, 늦은 밤 찾아오는 피곤과 부채의식이 뒤엉켜 잠들었다, 아침이 되면 또 괜찮은 하루, 괜찮은 나를 기대하게 된다. 나를 배반하는 건 언제나 나다. 더 읽기 »

인생 피자

점심에 먹은 맛있는 피자 이야기. Jumbo Foodmarkt에서 살라미 피자에 모짜렐라와 블랙 올리브를 올려달라고 주문했는데, 직원이 나중에 몇 조각으로 자를건지 먼저 물었다. 8등분 해달라고 했는데, 도우를 얇게 펴서, 모서리 근처까지 치즈를 골고루 뿌린 다음 살라미 아홉 장을 정성스럽게 얹었다 (한 장을 중심에 놓고 나머지는 한 조각 당 한 장씩 들어갈 수 있는 일정한 간격). 올리브도 한 조각에 2-3개쯤 먹을 수 있게 일정하게 올리되 두 번 배어 먹을 걸 생각해서 중심부에 가까운 쪽에 하나, 나머지는 조금 멀리 얹었다. 허브도 처음부터 뿌리지 않고 (그럼 나중에 약간 타서 쓴 맛이 난다) 오븐에서 중간쯤 피자를 꺼내 허브를 골고루 뿌리고 다시 오븐에 넣는 걸 봤다. 오븐에서 꺼낸 다음에는 더 읽기 »

Hamra by Collectif Encore

오랜만에 스크렙하고 싶은 건물 발견. 탁 트인 대지, 굴뚝/난로/사다리/지붕/욕조의 활용법, 개방감을 극대화하는 창, 단순한 매스, 콘크리트와 나무의 합, 주택이자 일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우겨넣으면 대충 이런 건물이 나오는구나.

설계 및 인테리어 디자인: Anna Chavepayre, Collectif encore

사진: Michel Bonvin

https://www.archdaily.com/910867/hamra-collectif-encore

 

요즘

요즘 진저브래드맨에 푹 빠져있는 서진이와 만든 과자. 지난주 쿠키맨을 직접 만들어보자며 파우더랑 장식용 설탕 튜브를 샀었는데, 오늘 보니 집에 버터가 없어서 아이와 슈퍼에 다시 다녀왔다. 버터를 손에 들고 핑크퐁 진저브래드맨 노래를 부르며 신나했다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모든 게 너무 좋다.

더 읽기 »

LC3 POLTRONA, Cassina

외출보다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멋진 암체어는 인생 소품이다. 

더 읽기 »

요즘

핀란드 Tampere에 위치한 TAMK Proakatemia로 출장을 다녀왔다. Tampere는 Tilburg처럼 과거 섬유산업이 견인했던 도시라는데 지금은 젊은 기업들이 옛 공장 건물들을 채워가고 있다. TAMK는 학생 만 명 규모의 대학이고, Proakatemia는 그 중 선발된 1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직접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지역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본 캠퍼스에서 1년을 보내고 Proakatemia로 오면 강의와 시험은 사라지고 Proakatemia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따라 나머지 3년을 보낸다. 학생들은 열정적이었고, 선생들은 차분했다. 그들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의 학습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공동체성을 발견하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에 들어갈 때 우리는 먼저 신고있던 신발을 벗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가 신발을 벗는 바로 그 순간에 거의 다 담겨있다고도 생각했다. 조금, 영적이었다.

더 읽기 »

네덜란드 교육제도에 관해..

네덜란드 교육제도에 관해 간략하게 정리해봤다. 공개된 정보에 내 의견을 보탰다.

최근 업데이트 (2018년 11월 23일)

출처: The Dutch education system, https://www.s-bb.nl. 

더 읽기 »

Natalia Lafourcade: NPR Music Tiny Desk Concert

이해 할 수 없어도 이해 할 수 있다는게 잘 이해되지 않는 저녁

 

Tap

결혼 10주년

벌써 10년. 한 팀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기

Fontys에서 일을 시작할 때 노트북, 휴대폰과 심카드, 사물함 하나를 받았다. 난 내 방이 따로 없고 ‘Factory’라는 공간에 빈 자리가 있으면 그냥 앉아서 일한다. IT부서나 행정직원들은 대부분 자기 방과 책상이 있는 반면, 학과에 속한 사람들은 심지어 학장까지 노트북 하나 들고 빈 자리를 찾아다닌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자료를 PDF로 읽고, 글은 워드에 쓰며, 계산은 엑셀로, 강의 자료는 PPT로 만든다. 함께 쓰는 자료들은 클라우드에 있고, 나 역시 모든 자료를 공유폴더에 저장하고 싱크 시킨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열리는 오피스 도구 덕에 실시간으로 작업하여 공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고 보니 일하는 방식이라는게 이렇게나 빨리, 많이 변했다.

더 읽기 »

요즘

올 여름은 유독 길고 더웠다. 그러다 어느 날 찬 바람이 불더니, 뜨겁고 환하던 여름이 갑자기 끝나버렸다. 물론 휴가도 함께 끝났다. 이 집에서 아이와 처음 보낸 여름은 정말 좋았다. 부엌에서 뜰 쪽으로 난 문을 열어놓으면 아이는 온 종일 집 안팎을 오가며 놀았다. 이 집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

공룡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큰 공룡이고 아이는 아기 공룡이었는데, 배가 고파서 엄마를 먹어야겠다고 하니 아이는 나를 막아서며 그러면 안된단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 으어~ 소리를 내며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갑자기 자기를 대신 먹으라고 소리쳤다. 이게 그 아이를 키우다 갑자기 울컥한다는 그런 순간인건가.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