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는 것. 기억해야 할 것.

학교 계약기간이 몇 년 남지 않다 보니 요즘 들어 귀국과 출산에 대해 아내와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제 부모가 될 준비를 해야겠다며 늦게까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아내가 먼저 잠든 그 날 새벽에 내가 먼저 세월호 소식을 들었다. 우리는 한동안 별말 없이 지냈다. 물속에 잠긴 배를 지켜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다. 아내는 몸살이 났고, 난 자주 멍하게 있었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다. 한 명의 어른으로, 어쩌면 내 책임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자 억울함과 무력감이 함께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우린 아예 돌아가지 않는 것에 대해, 그러기 위한 방법에 관해 꽤 많은 생각과 얘기를 했다.

결론은 돌아가자는 것. 모국어로 읽고 쓰고 말하는 즐거움 때문에, 내 나라라는 소속감 같은 것, 거기 태어난 것도 어떤 이유가 있을거란 생각에, 우린 수명 지난 원자로가 돌고 있다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했다. 그래야 할 것 같고, 그러고 싶다. 슬프게도.

어떤 의미 있는 글을 써야 한다거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오히려 하고픈 말이 많아도 지금껏 꾹 참았다. 위로나 분노, 희망의 글을 쓴답시고 과잉된 자의식을 풀어낼까 두렵기도 했고, 어찌 감히 공감을 말할 수 있나 싶었다. 그저 여러 사람들의 글을 계속 읽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자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상반된 색깔의 이야기가 넘쳐났고 난 평소 마음을 가까이 두고 있던 이들까지 피아식별을 해야 했다. 좌우적청의 구분 짓기가 무의미하다 할지라도, 낯선 사람은 물론 가족과 친구를 만날 때도 소속을 재확인해야 할 만큼 내 나라는 조심스러운 곳이었다. 이번 사건을 통해 걸러져 나오는 동시대의 온갖 찌꺼기들을 보고 있자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제대로 필터링 되려면 작은 표식이라도 남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입장을 정리하면 52%쯤 되는 적이 생기는 세상 아니던가. 살면서 적을 만들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그래서 난 이번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몇몇 장면과 그에 대한 생각들을 두서없이, 감정이 체 정리가 안된 채로 여기 적어두기로 했다.

정몽준 아들의 미개인 언급에 난 분노했다. 그건 아마도 식탁 머리에서 오랜 시간 쌓인 부모의 생각이자 현 정치인 다수의 인식이라 생각했다. 그 어미가 아들이 틀린 말 한 건 아니지 않느냐고 했을 때는 놀랍지도 않았다. 정몽준은 짧은 사과 후 여전히 서울 시장 선거, 멀리는 차기 대선 행보 중이다. 적어도 난 용서 못하겠다. 기자회견이라도 열어 두 부부가 아이와 함께 꿇어앉아 사과라도 했더라면 그 아이나마 용서 했을까. 그런 엉뚱한 장면이 시장 국밥 푸는 것보다 덜 엉뚱하지 않았을까 싶다. 권력욕에 매몰되어 염치라곤 찾아 볼 수가 없다.

청와대로 찾아간 희생자 가족들이 찬 바닥에서 밤을 지새웠을 때, 난 대통령이 최소한 그녀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시켜 따뜻한 차나 죽이라도 건네야 했다고 생각했다. 상식선의 바램이었는지 ‘내가 대통령이어도 저렇게는 안 했을 것’이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정치가 꽤 정서적인 놀음이라면 정치는 아프고 슬픈 국민을 위로할 수도 있어야 할 텐데, 박근혜 당신으로 대표되는 한국 정치의 성정은 한참 틀려먹었다. 공권력을 사용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니 스스로를 공무원이 아니라 여왕 쯤으로 생각하는 듯 하다. 부끄럽다. 하긴 당신은 원래부터 자격이 없었다.

교육부 장관 서남수는 희생자 가족들이 있는 현장에서 라면을 잡숴 논란이 되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면 엉엉 울기라도 하지. 때에 따라 동물도 음식을 가리거늘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은 거기서 그러면 안 되었다. 그 라면에 계란을 푼 것도 아닌데 찍힌 사진과 국민 정서상 문제가 된거라 말했던 청와대 대변인의 이름은 민경욱이다. 그는 기자 출신이다. 사진과 글에 사실과 정서를 함께 담아내야 하는 직업. 서남수 사진에 담긴 무치와 그걸 접한 국민들의 마음이 당신 눈엔 별게 아닌 것이었다니. 하긴 이 시대에 기자 정신이란 게 있었던가. 강병규 안전행정부 장관은 사고 당일 보고를 받고도 예정된 행사 일정을 소화하느라 현장 방문을 늦춘 데다 사상자 파악도 안 된 사고 당일 야식으로 치킨을 시켜먹어 논란이 되었다. 누군가 그 상황에 닭이 넘어갔으면 아예 치맥으로 시키지 그랬냐고 했다. 같은 부처 국장 송영철은 팽목항 현장에서 기념촬영을 한 게 논란이 되어 해임되었고, 안전행정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던 김호월 교수는 “유가족이 무슨 벼슬 딴 것처럼 쌩 난리 친다”며 희생자 가족들을 다시 미개인이라 불렀다. 경기도지사 김문수는 라면과 치킨에 비길만한 시를 남겼다. 시라니. 아 정말 병신 열전이다.

세월호 사고 희생자와 교통사고 사망자를 비교했다 하여 논란이 된 전 KBS 보도국장 이름은 김시곤이다.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니 정확한 워딩은 알 수 없어 당신의 변명을 받아들인다손 치더라도 세월호 사고는 ‘안전불감증’이라는 간편한 카테고리로 묶어내기에는 너무 슬프고 무거운 일이었다. 당신이 국가 공영방송의 보도를 책임지고 있었다니, 우리의 안전불감이 심각하긴 했던 것 같다. 추모집회에 참석한 학생들이 6만 원씩 일당은 받은 거라 폄하했던 정치인의 이름은 정미홍이다. 그녀는 KBS 아나운서 출신이며 더코칭그룹의 대표이다. 당신은 입으로 일어서서 입으로 망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거다.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은 심히 걱정되는 인물인데 한 워크샵에서 세월호 정부책임론에 대해 대통령과 정부를 향한 국민들의 공격이라 표현했다. 아무래도 육사 출신이라 군부 시절에 대한 동경이 있는 듯한데, 국민 ‘공격’에 대한 방어태세로 땅크는 완비되어 있으신지 궁금하다. 그나저나 국가 보훈처는 일종의 복지기관인데 왜 안보교육을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신이 구상한 안보 교육이 다들 조느라 정신 없는 예비군 훈련장에선 별 상관없을지 몰라도, 아이들 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니 사실 큰 걱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몇몇 지인들과 이야기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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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는 배에서 아이들이 남긴 영상이 인터넷 여기 저기에 쉴새 없이 올라오는게 마음을 더 복잡하게 만든다. 이토록 큰 슬픔을 흩어진 개인들끼리 ‘공유’하며 감내하다, 임계점과 유통기한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게… 글쎄 진정한 공감일까 의심스럽기도 하다. 뭐라도 쓸모 있는 걸 하고 싶은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얼마나 어떻게 가능한건지 잘 모르겠다. 전에 수학여행이나 수련회 안전 관리 메뉴얼 관련 글을 적어둔 게 있는데 내용을 보완해서 학교나 교회에서 단체여행을 기획하는 몇몇 지인에게라도 보내주려고 작업중이다. 이와 관련하여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연락을 주면 고맙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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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가지 사건을 덧붙여야겠다. 한기총의 조광작 목사는 여기 차마 쓰기에도 뭐한 막말로 문제를 일으켰고 박근혜의 눈물에 공감하지 않는 나와 같은 국민들을 백정이라 표현했다. 또한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는 정몽준 아들의 미개인 망언이 틀린 말은 아니라 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제 솔직히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두 개인은 미쳤고, 이들이 버젓이 목사로 활동하는 한국 교회의 현실이 부끄럽다.

 

Brompton – oldie but goodie

1997년생 브롬톤. 핸들그립 바꾸고 한 컷.

Hamra by Collectif Encore

오랜만에 스크렙하고 싶은 건물 발견. 탁 트인 대지, 굴뚝/난로/사다리/지붕/욕조의 활용법, 개방감을 극대화하는 창, 단순한 매스, 콘크리트와 나무의 합, 주택이자 일하는 공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우겨넣으면 대충 이런 건물이 나오는구나.

설계 및 인테리어 디자인: Anna Chavepayre, Collectif encore

사진: Michel Bonvin

https://www.archdaily.com/910867/hamra-collectif-encore

 

요즘

요즘 진저브래드맨에 푹 빠져있는 서진이와 만든 과자. 지난주 쿠키맨을 직접 만들어보자며 파우더랑 장식용 설탕 튜브를 샀었는데, 오늘 보니 집에 버터가 없어서 아이와 슈퍼에 다시 다녀왔다. 버터를 손에 들고 핑크퐁 진저브래드맨 노래를 부르며 신나했다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이 모든 게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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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C3 POLTRONA, Cassina

외출보다 집 안에 있는 걸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멋진 암체어는 인생 소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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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핀란드 Tampere에 위치한 TAMK Proakatemia로 출장을 다녀왔다. Tampere는 Tilburg처럼 과거 섬유산업이 견인했던 도시라는데 지금은 젊은 기업들이 옛 공장 건물들을 채워가고 있다. TAMK는 학생 만 명 규모의 대학이고, Proakatemia는 그 중 선발된 15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 직접 비즈니스를 운영하고 지역 기업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일종의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다. 본 캠퍼스에서 1년을 보내고 Proakatemia로 오면 강의와 시험은 사라지고 Proakatemia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따라 나머지 3년을 보낸다. 학생들은 열정적이었고, 선생들은 차분했다. 그들은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하나의 학습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는데,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에서 이 정도의 공동체성을 발견하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교에 들어갈 때 우리는 먼저 신고있던 신발을 벗어야 했다. 이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신발을 벗는 그 순간에 거의 다 담겨있다고도 생각했다. 조금, 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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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p

결혼 10주년

벌써 10년. 한 팀이 되기까지 걸린 시간들.

 

 

디지털 노마드로 일하기

Fontys에서 일을 시작할 때 노트북, 휴대폰과 심카드, 사물함 하나를 받았다. 난 내 방이 따로 없고 ‘Factory’라는 공간에 빈 자리가 있으면 그냥 앉아서 일한다. IT부서나 행정직원들은 대부분 자기 방과 책상이 있는 반면, 학과에 속한 사람들은 심지어 학장까지 노트북 하나 들고 빈 자리를 찾아다닌다.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자료를 PDF로 읽고, 글은 워드에 쓰며, 계산은 엑셀로, 강의 자료는 PPT로 만든다. 함께 쓰는 자료들은 클라우드에 있고, 나 역시 모든 자료를 공유폴더에 저장하고 싱크 시킨다. 브라우저에서 바로 열리는 오피스 도구 덕에 실시간으로 작업하여 공유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적고 보니 일하는 방식이라는게 이렇게나 빨리, 많이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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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올 여름은 유독 길고 더웠다. 그러다 어느 날 찬 바람이 불더니, 뜨겁고 환하던 여름이 갑자기 끝나버렸다. 물론 휴가도 함께 끝났다. 이 집에서 아이와 처음 보낸 여름은 정말 좋았다. 부엌에서 뜰 쪽으로 난 문을 열어놓으면 아이는 온 종일 집 안팎을 오가며 놀았다. 이 집도 아이를 키우고 있다.

공룡놀이를 하고 있었다. 나는 큰 공룡이고 아이는 아기 공룡이었는데, 배가 고파서 엄마를 먹어야겠다고 하니 아이는 나를 막아서며 그러면 안된단다. 이거 재미있겠다 싶어 으어~ 소리를 내며 더 가까이 다가가는데, 갑자기 자기를 대신 먹으라고 소리쳤다. 이게 그 아이를 키우다 갑자기 울컥한다는 그런 순간인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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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티스(Fontys) Academy for Creative Industries

 

8월 20일부터 Fontys ACI(Academy for Creative Industries)로 출근한다. 일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에 좋은 조건으로 가게 되었다. 평소 관심 있던 창의성, 디지털 비즈니스 컨셉에 관해 가르치면서 연구 시간도 가질 수 있고, 2019년에 입주할 새 건물의 학습공간 디자인 과정에 일부 참여하기도 한다. 박사 논문 주제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고, 일종의 정년 트랙에 들어왔으니 여러모로 내 경력의 중요한 분기점에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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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iroquai Bee Gees Mashup – Pomplamoose

어라,

슬픔의 유통 기한

나와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오래 슬퍼할 일이 생길때면, 난 이 슬픔의 유통 기한에 대해 생각한다. 적어도 어느 동안은, 페이스북 같은 곳에서 농담이나 누군가의 사사로운 일상을 보고 싶지 않다. 누군가는 그 역시 내가 슬픔을 소비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라 비판하겠지만.

노회찬 의원이 세상을 떠났다. 이런 슬픈 일들이 있는지조차 모르거나, 그것이 아무런 의미도 아닌 사람들이 남기는 글을 읽으며 난 피로와 배신감을 느낀다. 되려 이를 조롱하는 사람들을 보며 세상에 악인이 너무 많은건 아닐까 생각했다.

세월호가 가라 앉을 때 그 슬픔에는 기한이 없을거라 생각했지만 난 금새 다시 웃었고, 일상은 빠르게 회복되었다. 내게도 어떤 기한이 있었던 것 같은데, 생각보다 짧았다. 나도 결국 그냥 타인이었던 걸까… 

내가 친구와 선생으로 여기는 많은 이들이 어제 오늘 많이 슬퍼하고 있다. 나도 한 마음이다. 나를 바꾸는 계기가 되길… 슬픔의 유통기한과 상관 없이. 

아 정말. 멋지군.

Three Meals a Day

하루 세 끼 밥 먹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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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

긴 겨울이 끝나면,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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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칭찬을 받고, 인기를 얻고, 높은 지위에 올라 세력을 가지게 될 때 사람들은 변했다. 유명세란 어떤 방향으로든 결국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건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대게 나쁘게 변했다. 한 명씩 등을 돌리고 거리를 두었지만 인파에 묻혀 유치하고 추잡한 언행을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칭찬에 익숙해진다 느낄 때, 앞에 서서 말 할 기회가 생길 때마다 문득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마음은 아직 청춘’이란 말에 공감했다. 정말 마음은 별로 늙지 않았다. 그 때 설레었던 것들은 지금도 똑같이 그렇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냥, 몸과 마음의 간극을 넓히는 일일 뿐.

어떤 사람이 고민을 털어놓고 싶어 나를 찾아왔다. 나는 대체로 이야기를 잘 들었지만, 더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