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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학습과 환경

Tecno Nomos

아, 세상 멋진 테이블들.
이 중 하나만!

식탁 포함, 가장 좋아하는 테이블 디자인은 두꺼운 (가능하면 다이 캐스팅 부속을 사용한) 금속 프레임에, 다리는 달 착륙선 landing legs 처럼 중심에서 바깥쪽으로 사선으로 벌어지고 (splayed legs) 바닥과 면하는 부분, 혹은 상판과 면하는 부분에 동그란 패드가 달려있는 형태.

Copyrights © Foster + Partners

이런 디자인의 대표 주자들을 골라보면,

  • Alias Frametable
    Alberto Meda 디자인.
  • Vitra Ad hoc
    Antonio Citterio 디자인.
  • Ahrend Ahrend 1200
    건축 사무소 MVSA Architects 디자인.
  • Tecno Nomos
    Norman Foster 디자인.  
  • Kartell Glossy 
    Antonio Citterio & Glen Oliver Löw 디자인.

그 중 하나를 고르라면 Nomos!

가장 좋아하는 모델은 이런 디자인의 원조라 할 Tecno의 Nomos. 1986년 노먼 포스터가 디자인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80년대 초, 노만 포스터가 설계한 스웨덴 르노 센터(Renault Distribution Centre) 곳곳에 프로토타입이 먼저 사용되었고, 86년에 Tecno가 정식 제품으로 출시했다. 프로토타입은 Tecno의 매끈한 알루 프레임과 달리 르노센터 외부 구조와 같은 샛노랑색이었다고.

유리 상판을 얹은 ‘Table‘ 시리즈가 유명하지만, 난 90년대 생산된 구형 ‘Workstation’ 시리즈를 찾고 있다 (당시에는 그냥 Nomos System이라 불렸다).

Nomos workstation의 경우 upright 프레임을 끼워서 작은 선반을 얹거나 가림막 등을 더할 수 있다. 72cm 짜리 긴 upright 프레임을 끼우면 선반이라기 보단 상판같은 역할을 하는데 상판 아래에 조명을 설치하기도 한다.

내가 알기로 90년대 모델은 72cm 프레임만 사용했고, 그 프레임에 Nomos 전용 Alp조명(역시 Norman Foster가 디자인했던 플로어 램프)을 얹어서 공간을 넓고 은은하게 밝힐 수 있었다. 물론 이 조명을 upright 프레임 없이 책상면에 바로 올리면 데스크 조명이 된다 (지금도 어디선가 이 조명을 구입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내의 작업실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는데, 위에 언급한 책상 중 하나를 골라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가능하다면 전용 조명까지 갖춘 구형 Nomos Workstation 두 세트 (나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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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2020년 4월의 기록

Covid-19로 인해 계속 집에서 일한다. 요즘처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때, 원하면 언제든 ‘붉은 돼지’ (紅の豚 / Porco Rosso, 1992)를 볼 수 있다는 건 행운이다. 아이에게 처음 보여준 지브리 작품은 ‘내 친구 토토로’. 살면서 적어도 한 번, 가능하면 우리 집에도 검댕이가 산다고 믿을만한 나이에 토토로를 만나는 것 역시 행운이다.  

시시덕거리며 아무 글이나 적을 수는 없는, 가능하면 잊지 말아야 할 날짜들이 늘어난다. 개인사를 포함한 역사에 대한 인식 대부분은, 먼저 떠난 사람들을 남달리 기억하는 일이다. 어제도 그런 날이었고, 지난 주도, 그 전 주에도 그런 날이 있었다.   

온라인으로 급히 전환했던 2학기 첫 번째 블럭이 무사히 끝났고, 과제에 점수를 매기고 있다. 좋은 결과를 낸 학생들에게는 내가 주는 학점이 보상이 되겠지만 (네덜란드 대학 학점은 절대평가고, 난 에이플 폭격기에 가깝다), 다른 쪽 학생들에게는 낮은 점수가 낙인이자 벌이 되기도 한다. 세상이 많이 바뀐 것 같은데, 선생이 학생을 평가하는 방식은 크게 바뀐게 없다고 느낀다. 맞는 답을 고를 수 있는 능력은 정확하게 어떤 역량을 반영하는건지, 부분의 합과 평균이 그려내는 전체는 무엇인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5.5라는 숫자는 정확하게 무얼 의미하는 건지, 학생들이 졸업하고 접할 소위 현실의 세계는 우리의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종이 몇 장에 점수를 매기는 행위가 학생들의 인격과 삶을 평가하는 데까지 손쉽게 이르진 않는지, 그렇다면 난 그럴 자격이 있는지… 늘 머리가 복잡해지는 채점 기간. 

9월 새 학기 계약 갱신부터 정년 보장을 받게 됐다. 에둘러 말할 것 없이 아주 아주 기쁘다. 영주권이 나올 때도 그랬었고,  불확실의 시대를 살며 접하는 ‘permanent’라는 글자는 조금 더 특별하다. 내가 원하면, 이 학교가 건재하는 한 여기서 평생 일할 수 있다는 건데, 먼 미래의 일은 여전히 모르겠고, 당장 내년에 할 일들이 있어서 감사하다.  

&는 무엇을 할 수 있나요?  

서로 이름 대신 이니셜을 부르는 회사가 있다. 우연처럼 또 필연처럼 알게 되어 언제든 어떻게든 나도 맴버가 되고 싶은 곳인데, 평소 ‘&’ 맴버로 생각하고 있다고 적힌 엽서를 받았다. 2020년 4월도 기억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그 중 하나를 꼽으라면 이것!

19분 30초: 마녀 배달부 키키
1시간 2분: 붉은 돼지
1시간 37분: 내 친구 토토로

아이가 퇴근(?)시간 즈음 다락으로 올라왔길래 히사이시조 콘서트 토토로 테마곡 연주를 보여주면서 헤드폰을 씌워줬다. 어릴 적 아버지가 작업실을 비우면, 카세트 데크에 이런저런 테잎을 바꿔 끼우면서 음악 듣는걸 좋아했었다. 서랍처럼 열리는 카세트 보관함을 열면 노란색 도이치 그라모폰 테잎들이 많았었다. 아이는 나와 같은 음악을 들을 수 있을 만큼 컸다. 오디오 세트를 사야할 때인가.  

없어도 일은 잘 할 수 있고, 있다고 일을 더 잘하는 것도 아니겠지만, 다락에 놓을 데스크탑 한 대를 구했다 (재택근무와 소비욕은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 듯). 타워형 Mac Pro 2012년 모델인데 치즈 강판을 닮아서 Cheesegrater라고도 불린다. 로테르담 소재 한 건축 사무소가 새 오피스로 이사하면서 내놓은 걸 좋은 가격에 가져왔다. 세상에는 수많은 ‘클래식’들이 있지만, 컴퓨터 중에 10년 넘게 ‘여전히 쓸만하고 이만한게 없다’고 평가받는 건 아마도 이 모델이 유일하지 않을까. 겉과 속이 모두 단단하고 정갈하게 디자인되었고, 확장성과 호환성이 좋아 최신 부품과 장치들이 무리 없이 붙는다. 이런 멋진 물건은 직접 써봐야지. 12코어 CPU에 메모리를 96기가로 올리고 NVMe SSD를 부팅 디스크로 잡으면 파워포인트 정도는 무리 없이 돌아가겠지. 포르쉐 타고 동네 슈퍼 갈 수도 있지, 아무렴 어때. 

호스팅 회사를 바꿨고, 마이그레이션 대신 워드프레스를 새로 설치하고 예전 글을 하나 하나 옮기고 있다. 그런 김에 오래 고집했던 블로그 디자인도 바꿨다. 이럴 때마다 난 오래 고민하고, 이것 저것 뭘 많이 따져보다가 결국 뻔한 결정을 내리곤 하는데, 이번에 고른 디자인은 설치형 워드프레스에 디폴트로 들어있는 2020년 테마다. 

많은 사람들이 Post Covid-19를 예견하고 예측한다. Bond도 별도의 리포트를 냈고, 지난주 딜로이트 리포트도 흥미로웠다. 나조차도 교육 현장에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래서, 정말 세상이 얼마나 많이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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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2020년 3월의 메모

재택근무 일주일. 지난 금요일 학교가 급하게 문을 닫았고 수업을 포함한 모든 업무를 온라인으로 전환하는데 주말 포함 딱 3일이 주어졌다. 학교 소식지를 보니 수업 90%가 디지털로 전환되었고 다음 주까지 100% 온라인 교육을 하겠다고 한다. 우리 과도 그렇게 3일만에 모든 걸 디지털로 바꿨다. 수업, 미팅, 프로젝트가 Ms Teams 안으로 모두 들어왔고 다들 마치 전에 해왔던것처럼, 꽤 능숙하게, 때론 능청스럽게 잘 적응하고 있다. 이메일 사용은 오히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메일 커뮤니케이션이 느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우린 코로나 이전으로 완전히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일하고 가르치는 방식에 있어서는.  

전문가(재택근무 전문가?)들 추천대로, 아침에 아래위 말끔하게 차려입고, 가방 메고 다락방으로 올라간다. 그간 하나씩 장만해 놓은 책상, 의자, 컴퓨터, 모니터, 키보드 덕에 와이파이가 약한 것 뻬곤 꽤 괜찮은 업무 공간을 만들었다. 점심시간엔 1층에서 가족들과 같이 밥을 먹고 저녁 준비하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고 내려오는데, 출/퇴근의 경계는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일을 더 많이 하는 것 같다… 또다른 문제는 살이 찐다는 것. 학교 건강센터에서 재택근무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운동 영상을 보내줬는데 이미 살이 쪄서 운동할 마음이 들지 않는다.   

아이 학교가 문을 닫은 다음 날 시청에서 우편물이 왔다. 시장 이름으로 발송된 코로나 관련 편지였는데 뒷면에 아이들에게 쓴 편지가 있었다. ‘얘들아,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었구나…’ 그런 내용. 우리 학과에서는 학생들에게 보내는 영상 편지도 만들었다. 다들 힘내고, 우리가 있다는 걸 잊지 말라고 했다. 나도 맡은 부분을 폰으로 찍어 보냈었다. 금요일에는 총장과 코비드  대응팀이 보낸 엽서가 왔다. 크게 “우린 당신이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라고 적혀있었고, 전 교직원에게 발송된 엽서임에도 받는 사람에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말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있는 왓츠앱 그룹에서 각자 자기 집 앞 블럭에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게 하자는 아이디어가 모여서 동네가 알록달록해졌다. 아이 친구 엄마 한 명은 집 앞에 히아신스 구근이 담긴 화분을 놓고 갔다. 연락이 뜸하던 사람들과 안부 인사를 나누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는 거의 매일 오늘 하루는 뭐하며 보냈는지 얘기를 나눈다. 마음은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큰아이 장난감 통에는 70년대 3인치 매치박스 미니카, 80년대 초반 플레이모빌 같은 옛날 장난감들이 가득하다. 개인적으로 그 시기 장난감들의 무게감, 비율, 색감을 좋아하는 편. 그리고 오래 남아 사랑받는 제품들의 아이덴티티를 아이가 어떤 면으로든 느껴봤으면 하는 마음도 있다. 가끔 아이가 나의 유년을 공유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지금은 새로 사준 레고에 자리를 내어줬지만, 최근에 Tonka의 빨간 사다리차를 구해줬더니 한동안 내내 그것만 가지고 놀았다. 그냥 기분이 좋았다. 나도 저런 메탈재질 자동차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사진 속 하얀 Tonka 경찰차는 정말 어릴적 내 장난감 같다. 머리맡에 두고 자고 싶을 지경. 

난 거의 모든 것에, 어떤 균형을 유지할 만큼의 적절한 분량(capacity)이 있다고 믿는 편인데, 감정, 한 곳에 모인 사람의 숫자, 어떤 이슈에 관한 정보의 양 같은 것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지난 주에는 매일 들르다시피 하던 페이스북 그룹에서 나왔다. 회원수가 8천명을 넘어섰으니 이상한 사람 하나둘 섞이는 게 이상할 일도 아니지만, 요즘 들어 너무 많은 정보와 날카로운 문장들이 날 지치게 하곤 했다. 거기서 받던 소식들이 사라지자 마음이 고요해졌다. 나에게 미디어 리터러시란 지적 충족과 그에 따르는 피로감 사이 균형을 위해 사람과 장소를 거듭 거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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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집을 바라는 것, 집에 바라는 것.

주택을 구입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우리에게도 나이에 걸맞은 성공의 지표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지게 된 마당 딸린 작은 3층 집은 우리가 얻어낸 성취였고, 그래도 어디론가 잘 가고 있다는 보증 같은 게 되어주었다. 주택 생활은 아파트 때와 여러모로 달랐다. 한 동네의 주민이 되어 다소 옛날 방식으로 작동하는 커뮤니티의 장단점도 경험해보고, 부지런히 관리를 해야만 집이 제 기능을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첫 아이가 스스로 걷기 시작할 때 주택으로 온 건 아이에게도 좋은 선택이었다. 널찍한 마당과 시원한 창밖 풍경이 만드는 특별한 시간들, 그것이 아이들 성장에 미치는 (결코 적지 않아 보이는) 영향 같은것들에 관해 자주 이야기한다. 그리고 언젠가 우리 취향을 진하게 담은, 우리만의 필요를 온전히 채워주는 주택을 직접 지어보고 싶어졌다. 인생 목표가 조금 바뀌었달까. 7년 안에 바라던 집을 지어서 거기서 오래 살고 싶다. 마음이 통하는 가족 둘셋이 이웃하여 같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외국에서 살아볼 만한 확실한 이유 하나가 늘 것 같기도 하다. 이런거, 인생  목표여도 상관없지 않을까. 어차피 집은 많은 것을 담는데.  

언젠가 건축가를 만나야 한다면 우리가 바라던 집에 관해 무어라 이야기해야 할까?  

  • 단순하고 일체감이 느껴지는 무겁고 두터운 외벽 혹은 형태감. 
  • 어떠한 인공물도 보이지 않고, 바깥의 풍경을 정돈하여 실내로 들이는 프레임으로 역할 하는 크고 두꺼운 유리 (혹은 창)가 있는 벽. 
  • 나무, 콘크리트, 돌, 흙, 금속 본래의 물성을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외부/실내 마감재 선택과 마감 방식.
  • 각기 다른 속성의 자재들이 만나는 지점의 구조적인 미와 공정상의 견고함이, 결합 방식 또는 이를 돕는 자재의 두께와 크기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남.
  • 실내 구획은 단순하고 개방적이어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어디서든 서로의 존재를 쉽게 인지할 수 있음.
  • 소박한 평면계획은 다양하고 의외적인 높이차를 통해 융통성과 위트를 더함. 
  • 방은 6면 중 어느 하나도 다른 방과 면하지 않음.
  • 수납 공간들은 설계 단계에서 이미 구조로 계획되어 벽체의 일부이거나 벽 안에 온전히 숨어 있으며, 거대한 수납공간과 그에 딸린 문은 거의 모든 생활 집기들을 단숨에 숨긴 후 공간의 면으로 돌아갈 수 있음.
  • 보존된 자연 위에 집을 얹을 경우 대지 훼손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설계와 시공이 이루어지며, 매스가 두텁다 하더라도 환경에 순응하는 형태, 재질, 색감을 가져야 하고, 동시에 집의 기능은 바람, 습도, 온도 등의 환경을 잘 극복하며 항상성을 유지해야 함. 
  • 여러 가족이 함께 집을 지을 경우, 극단적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졌지만,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다목적 공유 공간이 필요.   
    v.0.2 updated on 10 Nov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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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2020년 1월의 메모

차가 한 대 더 필요하여 전기차를 구입했다. 최근 집 바로 옆에 충전기가 생겼고, 세금 면제에, 보험료 할인, 학교에선 직원 카드로 무료 충전도 가능한 데다, 자주 가는 장소마다 전기차 자리는 늘 여유가 있어서 상대적인 주차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전기차 구매는 그저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재미있는 건 전기차를 타면서 운전 습관이 바뀌고 있다. 히터를 켜거나 급출발, 고속 주행을 하면 주행거리가 뚝 떨어지는데, 이 때문인지 최대한 전기를 덜 쓰려고 여러모로 애쓰게 된다. 운전뿐만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에너지 소비 행위에 예민해졌고, 당연히 에너지를 아끼는, 결국 환경을 덜 해치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 심지어 분리수거도 전보다 더 꼼꼼하게 한다. 낡은 생각과 오래 굳혀진 습관들이 새로운 기술과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법과 제도적 장치들에 의해 이토록 순순히 바뀐다. 물론, 다소, 유물론적인 생각. 

지난 학기 과목 중 자신을 둘러싼 사회/문화적 유산과 그것이 본인의 사회화 과정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에세이를 제출하는 과제가 있었다. 결과물을 받아보니 학생들은 너무나 담담하게 자신의 부모와 그들이 속했던 사회를 통해 배운 것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가정과 사회에서 요청된 도덕률과, 그에 응했던 한 개인으로의 자기 정체성, 성 정체성, 부모의 이혼, 따돌림, 가정 폭력 등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미친 영향, 슬픔, 우울, 관계의 얽힘에 대한 경험 등 단순히 평가자 시선으로 읽어내기엔 힘겨운 주제들이 꽤 건조한 톤으로 기술되어 있었다. 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 첫 주 중반이 흘러가기까지 난 이 에세이들을 붙잡고 있었다. 채점의 의미가 없어 보였고 나와 동료는 거의 모두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 학점은 나갔는데, 어떤 잔상같은게 남아서… 자꾸 머리와 마음에 맴돈다.  

서진이는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잘 보내고 있다. 학교에 데려다줄 때마다, 교실에 들어가 자기 이름이 적힌 자리를 찾아 앉아있는 걸 보면 그렇게 기특하고 고맙고 감사하다. 아이가 채우는 하루의 경험과 생각들이 얼마나 많고 복잡할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냐는 질문에 뭔가를 떠올리며 바삐 움직이는 눈동자를 보면서 하루의 큰 보상을 받는다. 혹시, 언젠가 아이가 내게 같은 질문을 하게 된다면, 오늘의 제일 재미있는 일 같은 거 하나는 있어야겠지.

서원이는 그 사이 100일을 넘겼는데, 예방 주사도 한 번 맞았고, 우유도 잘 먹고, 이유식도 시작했고, 볼이 빵빵하고, 잘 웃는다. 둘째가 크는 모습은 첫재 때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기억되는 것 같다. 이게 책이라면 내가 무얼 읽고 있는지도 모르고 책장을 넘기는데, 일단 책장이 넘어가는 건 참 좋고, 다행히 한 쳅터가 끝날 때마다 요약 글이 있어서 대충 무얼 읽었는지 결국에는 대충 아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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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AMK X Parcels

Can’t Get You out of My Head (Cover)
AnnenMayKantereit x Parcels

원곡 테크노 요소를 드럼/베이스로 커버하니 완전 색다른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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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디자인

놀이터 7요소

레퍼런스 없이 그냥 평소 생각들을 모아서 정리한 글. 언급된 일곱가지 요소는 구체적인 디자인 요소라기 보단 ‘놀이터는 사용자에게 어떻게 역할해야 하는가’, 또는 ‘놀이터라는 공간은 인간에게 어떤 말/원초적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가’에 관한 내용이다. 

지켜주는 눈

주변과 동떨어지거나 사방으로 열려있기 보단, 주변 건물의 향이나 시설물 위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자연스레 놀이터를 자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아이들을 데려 온 부모들이 머무는 장소 역시 이 점을 고려해 계획되어야 한다. 

오르고 내림

대체로 인간은 높은 곳으로 올라가 멀리 내다 보는 것과 중력을 느끼며 빠른 속도로 하강하는 걸 즐기는것 같다. 내려가기 위해 올라가고, 오른 노력 대비 순식간에 내려가는 행위 자체가 삶에 대한 은유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미끄럼틀보다 방향성이 없는 산 형태의 무언가를 오르내리길 더 좋아하는 것 같고, 큰 아이들의 경우는 높은 곳에서 친구들과 앉아서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듯 하다. 

숨을 곳

폐쇄적이지 않으면서 외부로 향하는 자신의 시선을 충분히 가릴 수 있는 공간 요소가 필요한 것 같다. 많이 사용되는 터널의 경우 상체를 완전히 세울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별로라고 생각한다. ‘터널’보다는 ‘굴’ 하면 떠오르는 볼륨이 필요하지 않을까.  

반죽

물과 흙을 섞어 만든 반죽으로 어떤 형태를 만들어내는 행위는 문명 발전의 기초 동력이지 않았을까. 이건 인간이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쉽고 강력한 ‘창조’의 경험일지도 모른다. 놀이터 어딘가에 (마셔도 되는) 물이 나오거나 흐르고, 이를 흙과 섞어가며 놀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부모들의 세탁 편의와 소독이 쉽다는 점에서 흙 대신 모래가 현실적인 대안이겠지만, 흙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뛰어 잡기

아이들은 혼자 뛰지 않는다. 대부분 누군가를 잡기 위해, 누군가로부터 잡히지 않기 위해, 누군가에게 뛰는 걸 보여주고 싶어 뛴다. 어쩌면 뜀박질은 놀이터에서 가장 사회적인 활동일지도.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신나게 뛸 수 있을까? 잘 뛰게 하기 위해 생각보다 많은 고민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생명체

놀이터가 자연 자체이거나, 자연을 흉내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동네 애완견이든 지렁이든 간에 다른 생명체를 만나는 건 아이들에게 재미있고, 신비롭고, 중요한 경험이다. 놀이터는 동물과 곤충이 드나드는 곳이어야하지 않을까. 이건 놀이터가 얼마나 인공적이어야 하는가에 관한 질문이기도 하고, 거기에 얼마나 많은 식물이 필요한지 묻기도 하다. 

짓기

완제품 놀이 기구가 없는, 어쩌다 아이들이 모여서 놀이의 ‘터’로 사용되는 곳에 가보면, 아이들은 이런 저런 물건들을 모아 신기한 걸 만들면서 논다. 어쩌면 놀이터는 아이들에 의해 지어질 때 더 의미있지 않을까. 꼭 나무나 돌과 같은 자재나 원재료를 놓아두어야 한다기 보단, 그저 어떤 물건이어도 괜찮을거란 이야기다. 예를 들어 버려진 욕조같은. 그리고 우린 완제품 놀이 기구들 중 무얼 취하고 무얼 버려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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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Everyday Life

이들도 큰 변화 없이 오래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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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의 기록

범 내려온다

이날치 X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

익숙한 듯 낯선 멋진 것

A tiger is coming down, a tiger is coming
A beast is coming down
through the deep valley in the pine woods


His body is freckled,
His tail is stuffed
which is longer than a grown man’s fathom.

Making the high hills shiver,
his front leg is like a quiver,
his hind paw is like a jar,
Both ears are ripped ajar. 

Brandishing his sickle claws,
‘Charrrr!’
He splashes grass roots and pebbles.
Opening his crimson jaws,
‘Worirung!’
he rumbles.

Like the sky falls and
the ground settles down,
The turtle hides his head and
on the ground bows down.

Translated by 검은머리외계인 @ 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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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장

요즘

아기와 3주

둘째가 태어나고 3주가 흘렀다. 그래도 이번엔 시간이 흐르는 건 느낄 수 있다. 잊고 있었던, 아마도 가장 큰 난관은 한동안 삶에 빈틈이 없어진다는 것. 아기가 너무 어리면 내가 하는 일들 사이에 틈을 찾기 어렵다. 그나마 틈이 나면 잠 자고 씻고 밥 먹는 원초적인 일에 써야 한다. 사실 우린 온갖 생산적인 일들을 이 빈틈을 통해 하고 있었던거다.

아기는 잘 자란다. 종종 이제 다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만큼 컸다고 얘기한다. 비가역적이다. 그러니 지구에 적응해야 하고,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것에도 적응해야한다. 그러고 보면 엄마 뱃속은 우주보다 신비로운 곳인 듯. 여기, 지구에, 우리집에, 우리에게 온 걸 환영해^^

관계망

여기서 첫째가 태어났을 때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실 워낙 정신 없던 때라 외로운 줄도 몰랐다. 둘째를 임신하고 태어나는 과정에서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는데, 우리 삶이 단단한 관계망 안에 들어왔다고 느꼈다. 이웃들이 우체통에 넣어두고 간 축하 엽서와, 학교에서 보낸 꽃다발, 지인들의 메시지와 끓여다 준 미역국과, 물려받은 옷가지와, 오늘 어떤 학생이 준 할로윈 양말까지 모두 고맙고, 감사하다.

언제나

누군가와 누군가를 흉보고 싶다면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하는게 좋다.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과, 경우에 따라 누구의 편도 될 수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건 쉽지 않은데, 이럴 때 변함 없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내와 어머니뿐이다.

어떤 분

최근에 건너 건너 어떤 분을 알게 되었다. 더 정확하게는 그 분이 온/오프라인에 쓰는 글을 계속 읽고 있다. 그 안엔 흥미로운 이야기들과 배우고 생각할 거리가 충분하다. 예민한 관찰력, 좋은 품성, 풍성한 지식이 엿보이는 글들이다.  따로 메모하거나 저장했다가 강의 때도 자주 쓴다. 한 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다. ‘좋은 부모가 되는 법’이나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같은, 무슨 책 제목같은 질문들을 쏟아놓고 몇 시간 차 마시면서 얘기하고 싶다. 이런 어른이 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영주

EU 영주권이 나왔다. 이건 우리에게 또 어떤 의미일까.

최서진 | Seojin Choi
우리가 아이를 슬프게 해도 될까?

아이를 때리면 안 된다는 건 우리 시대 상식이 되었다. 무엇으로 어떻게 때리건, 장난 같은 꿀밤이든 회초리를 들었든 간에, 자극을 통해 행동을 교정한다는 식의 행동주의 유산은 벌써 사라져야 했다. 인류는 그런 방식이 결국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걸 느리고 처절하게 배웠다.

우리도 아이에게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데 요즘은 혼을 내는 것 자체, ‘훈육’이라 일컬어지는 엄한 꾸지람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첫째 아이는 종종 무언가를 잘못해서 혼이 난 후에 슬프다고 한다. 어른들은 가끔 슬프지 않기 위해 생각이나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글쎄 과연 아이들도 그럴까. 우리가 자녀를 슬프게 해도 괜찮은 건지 정말 잘 모르겠다.

부모가 된다는 건 참 어려운 일 같은데, 우리가 이걸 잘하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러다 아이가 그린 사람과 동물들이 활짝 웃고 있으면 그나마 조금 안심이 된다. 며칠 전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문 앞에 붙어 있는 아이 그림을 봤는데 역시 환하게 웃고 있길래, 그래도 우리 잘하고 있나 보다 하고 잠시 안도했다.